교육에 관한 비판적 패러다임

아래의 내용은 [위키세상: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경제와 참여미디어의 약속]의 “1장. 교육에 관한 비판적 패러다임”을 요약한 것이고 토론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와 내용 정리의 이유는 여기: [온라인세미나제안]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경제학과 참여 미디어의 약속(저도 같은 형식으로 올려봅니다)

 

1장 교육에 관한 비판적 패러다임

이들은 맑스가 자연 그 자체보다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의 목적 실현을 위해 어떻게 자원을 사용하였는가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물적 토대, 자본, 노동에 관심을 가졌고, “원료 가공 과정에서의 가치 형성에 대한 검토에 강조를 두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 시대의 린넨(원료)의 역할은 디지털 미디어와 디지털 리터러시의 사용이라 전제.

디지털 리터러시를,

 

-      공통 재화를 위한 디지털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 사용의 다양한 방법

-      개인적 장치들 또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이든 아니든 정보를 자리잡게 하고, 창조하고 그리고 평가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물질의, 사회의 그리고 개별의 정의를 증대시키는 동맹을 건설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제하며,

-      디지털 리터러시 목표는 듀이, 이반 일리히 그리고 파울로 프레이리 등 교육 비판 이론가에 의해 공유된다고.  

 

디지털 미디어를 향하는 세 가지 일반적인 인식으로서,

 

-      과학기술 결정론관점으로부터의 위협들(또는 심지어 공포들: 대표적으로 Martin Heidegger),

-      새롭게 강화된 활동적인 시민정신에 대한 약속들

-      새로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의 사용에 의해 개인 사업, 컨설팅 그리고 디지털 원격 교육과 같은 새로운 영역의 학습으로의 교육적 전문기술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능력들을 가져오는 가능성들을 소개.

 

세번째 문맥(가능성)에서 이들은 Kahn and Kellner (2006)의 논의를 소개하는데, 그들은 친목적인(convivial) 기술 개념은 교육의 근본적 재건설을 만들어가기를 추구하는 지금 기술리터러시 종류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l  Kahn and Kellner (2006) :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하게 하고, 비판하고 그리고 기술적인 우세와 촉진을 위한 목적과 대칭적으로 그들은 생태학적으로 특징된, 윤리적인, 그리고 변화하게 하는 주체가 되는 것으로서, 그들 살아가는 것에서의 압제적인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들을 변형하게 하는 다양한 기술리터러시를 진전할 수 있도록 도움받을 수 있어야 함. 이것은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성찰하기 그리고 대화, 문화적 가공품 그리고 펼쳐진 기술적인 혁명의 한복판에 있는 정치적 행동의 창조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한 멀티의 저항적 리터러시 생산을 필요로 함. 더욱이, 활동적이며 참여적인 주체들이 다른 이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나고 있듯이, 친목적인 기술에 대한 개념은 교육의 근본적 재건설을 만들어가기를 추구하는 지금 기술리터러시 종류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들은, 기술과 리터러시에 대한 질문 외에, 단지 소수만이 사회적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이거나 심지어는 혁명적인 잠재력을 포함하는 지속적인 질문에 도전해왔다며, 사례로서 위키피디아와 다른 위키들(디지털 기술에 대한 하버마스주의자들의 잠재성을 이상적으로 사례화하는)의 효과에 의해 이 질문들을 살피길 원하는데, 위키와 사회적 미디어의 다른 유형들이 어떻게 현실 세계의 구조적 강제와 충돌과 상호작용하는지 보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술의 성질의 깊이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며, 그것은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교육적 이론의 문맥에서의 디지털 미디어의 분석은 비판적 정치경제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고.

 

견해에 대한 관점 : 교육에 대한 비판적 교육학

 

이들이 기초하는 교육에 대한 비판적 교육학은 제도화된 사회 그리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학교의 폐지를 주장한 일리히의 견해에 기초(이후에 추상적이라고 비판하기는 하나).

 

우선 이들은, 비판적 교육학에서 신뢰되는 한 가지 기본 사항은 공식 학교교육은 매일의 삶과 보통의 활동들로 도달하게 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지만, 세 개의 상이한 관점으로 이를 구분.

 

-      첫번째는, 문화심리학의 영역에서의 발달가능성이 있는 발전이, 발달에 대한 비고츠키의 문화적 역사적 이론과 근접해있는 브루너 Bruner(1996)에 의해 개발되었다.

-      두번째 견해는, 학습은 사회적 현상이고 상이한 매일 그리고 작업과 연계된 실행에 결정적인 역할(Engestrom & Middleton 1996)을 한다는 것이다.

-      세번째 견해는 교육에 대한 비판적 정치경제라 불릴 수 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학습의 사회성 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정치적 기능과 학습과 체계적 교육의 결과가 관심을 받는다. 사회적 학습과 교육이 지식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제를 생산하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논쟁되어 온 것이다.

 

세번째 관점에서 사회적 학습과 교육은 지식 뿐만 아니라 정치적 주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며 이들은, 문화적 생산의 한 형태로서 교육과 학습은지식, 바람, 가치 그리고 사회적 실천의 건설과 조직에 관련되었다“.(Giroux, 1992, 3).

 

그러나 의미있는 학습 경험의 위치가 학교에서 피어 투 피어  학습 상황으로 이동했고 학교교육은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교실의 공식에서 집, 노동, 여가시간 그리고 대중 문화 그리고 네트에서의 그와 같은 다양한 학습 사이트의 비공식으로. 이 주장은 오늘날 전자적 정보 기술로 인해 보다 많은 정보는 교실 안보다 밖에서 유용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고.

 

역사적인 관점을 통해 보여진다면, 학교 교육은 최근의 현상. 인간의 자연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진 학습경험 대부분을 모았다고. 인간은 단순히 사는 것에 의해 배움. 삶 스스로는 가장 위대한 교육자(Antikainen & al. 1996). 이것은 다량의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가진 위키월드에도 적용.

 

근대는 학교 학습의 시대. 근대 학교는 다양하게 표준화된 절차에 의해 특징화되는 관료화된 조직임.(Kvale 1997).  텍스트 기초 학습으로 지도되고, 본질적으로는 공식적 그리고 의례화된 시험에 의해. Foucault에 따르면 시험은 분배와 분류의 개별적이고, 보장된 기능을 제도화하는 절차의 핵심. 학교는 근대 대중 사회의 생산물, 산업화의 필요를 위한 응답

 

후기 근대는 학습에 접근하는 다른 유형을 의미 : 후기 근대에서 가정적으로, 도덕적 그리고 실천적 확실성이 충돌하는 시대로 보여진다면, 학습은 가치 합리성을 통하여 정의될 것임 용어와 관련해서는 베버의 의미에서 그리고 노동시장으로의 보다 나은 능력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도구적 합리성을 통해서 보다는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변화의 방법으로서 간주될 것임. 유사하게 학습이 학교에서 다양하게 네트워크된 매일의 생활로 이동돼 올 동안 학습과 교육학은, Giroux’s (1994, x)의 말을 이용하면, “대화하는 다양한 사이트에 사람들을 함께 이르게 하는 공공 영역의 창조로서 정보를 교환하게 하고, 기울이게 하며, 그들의 욕망을 느끼게 하고 그리고 즐거움, 사랑, 연대 그리고 싸움에 대한 그들의 수용력을 확장시킬 것임.

 

기록스의 논의와의 연계선상에서 이들은, 이반 일리히의 학교폐지 사회 논의를 살펴봄. 이반 일리히는  서부사회의 학교화. 가치의 제도화, 소비-가정, 정당, 군대, 교회, 미디어. 모든 현재의 편리함은 그들이 본질적으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게 하기 위해 고안된 교과과정에 숨겨져 있다고 하며, 수업(teaching)으로부터, 학년 이동으로부터, 순종과 교육으로부터 학습을 분리해야 하고 학습 웹 은유 : 가상의 세계인 월드 와이드 웹으로부터 교육에서의 모든 가장 좋은 정신이 발견된다고.

 

이반일리히는 또한 제도를 조작하는 제도(법적 강제력 : 군대, 감옥, 정신병원, 요양원, 보육시설)와 우호적인 혹은 자발적인 제도(전화선, 지하철 노선, 메일 발송, 공공 시장 그리고 생각의 자유 교환, 커뮤니케이션과 자유로운 모임 사이의 협동을 용이하게 하는 네트워크와 같음)로 보고, 일리히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거나 다학문적이며, 우호적 제도의 생각을 통한 교육 개혁 뿐만 아니라 동시에 도시 계획, 건축, 사회 정책에 대한 제안이라고 함. 근대학교교육은 소비사회의 결과이자 원인, 이것은 학습과 교육을 사고 팔리게 만들었다고. 학교교육은 어린시절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생애학습이란 이름으로 어른시절에까지 확장

 

제도의 자발적인 이용 : 학습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에 관한 일리히의 핵심 생각을 포함하는 다른 학습인  웹은 그 가능성을 연다고. 그리고 학교 폐지 사회의 창조를 위한 세가지 요구가 있다고.

 

l  학습 제도의 변화

 

1.     현재 개인과 제도의 교육적 가치 실행에 대한 통제를 폐지하는 것을 통한 생각으로의 접근을 해방시키기 위한 체계로서의 교육적 목표를 제공하는 내용 서비스

2.     필요에 선 그들을 가르치고 실습하게 하기 위해 보장된 자유에 의해 공유의 기술을 자유롭게 하게 하기 위한 조절로서의 기술 교환

3.     개별 사람들이 모임을 요청하고 여는 능력이 돌아오게 하기 위한 인간의 비판적이며 창조적인 자원을 자유롭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서의 피어 매칭

4.     다수의 교육자에게 그의 피어스의 경험을 끌어오기 위한 기회를, /녀에게 제공하는 것에 의해 수립된 전문성에 의하여 제공된 서비스에 대해 그/녀의 기대를 실현시키기 위한 의무로부터 개인들을 해방하기 위한 그리고 그/녀 스스로에게 교사, 안내자, 충고자 또는 그/녀의 선택에 대한 치료자로서 위임하기 위한 목록으로서의 대다수 교육자에 대한 내용 서비스

 

l  교육 제도의 새로운 목표

 

1.     그들 삶에서 언제라도 배우길 원하는 모든 이에게 이용가능한 자원으로의 접근을 제공하는 것

2.     사람들이 그들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북돋는 것

3.     필요하면 언제이든 공공을 향한 이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l  교사의 역할 변화 : 새로운 유형

 

1.     다양한 학습 네트워크를 세우고 작동시키는 네트워크 관리자

2.     학습을 용이하게 하고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교육학자

3.     대화적이며 교육적인 관계를 생산하는 교육적인 지도자

 

이들은 또, 학습 웹이 기술이 아니라 협력, 돌봄, 사람 사이에서의 지식과 기술의 공유에 기초하기 위해선 제도의 역할과 사용에서의 변화는 현재의 세계관, 인간관 그리고 세계에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한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가치의 제도화의 독단인 기술유토피아에 살고 있지만 에리히 프롬이 인간근본주의라고 불렀던 다른 유토피아로 이동해야 한다고.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가지는 것으로서의 학습을 말했다면 되는 것으로서의 학습.

 

일리히는 사회적 권력, 분할, 공해 없는 순수함 같은 에덴에서 견해와 생각을 공유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섬과 같은 사회를 구상. 이것은 일리히의 유토피아 혹은 노마딕 포스트모더니즘의 밑그림이라 하며 이들은 일리히의 생각의 많은 문제로, 인간에 대해 지나친 긍정적인 이미지. 공정게임과 정의 사회에 대한 믿음. 본성적으로 선하다고, 학습 웹은 저절로 민주적이라고 믿는다는 등등을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그리고 교육적인 선택의 지속적인 자유를 위한 세계에서 counternarrative의 형태는 무엇인가라는 비판적 교육정신에 의한 질문을 긍정하며 의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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