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요약]: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 경제와 참여 미디어의 약속

아래의 내용은 [위키세상: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경제와 참여미디어의 약속]의 “결론”을 요약한 것이고 토론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와 내용 정리의 이유는 여기: [온라인세미나제안]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경제학과 참여 미디어의 약속(저도 같은 형식으로 올려봅니다)

결론 

 

1990년대 이래로, 세계는 소득 불평등, 양극화, 빈곤, 사회적 배제를 경험. 이들의 외관은 20세 이하의 5명 중 4명이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젊은 이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짐. 이들은 ICT의 사용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가장 활동적인 건설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많은 장애물이 존재.

 

수년에 걸쳐 많은 평론가들은 서양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해.

 

-      Stephen Toulmin (1998) : 계몽주의 의제는 서면으로부터 구두로, 총체성에서 구체성으로, 일반으로부터 지역으로 그리고 초월함으로부터 적시로의 강조의 이동이 느껴질 것이라고 제안. 더욱이, 그는 인간이 전적으로 세상을 규율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

 

두 가지 세계화 :

 

-      많은 수의 정치적 발언자들은 우리가 공동작업의 생각을 포용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파과적인 일방주의, 경제-기술적인 개발, 군사적인 권력 그리고 지식 생산 측면에서의 하나의 권력 구조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의 상황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강조. 불행한 상황은 인간의 고통, 문화적 갈등 그리고 생태적 재해와 함께 디지털의,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분열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 일방주의의 이러한 유형은 북구의 이점의 강화를 의미.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ICTs는 디지털 분할 뒤에 발명될 것. 더욱이 북구는 낡은 ICTs의 쓰레기 수거장으로서 남구를 이용할 것.

 

-      다른 선택사항은 안내하는 원칙이 지속가능한 발전이고자 하는 곳 그리고 높고 낮은 기술들이 균형적으로, 적절하게 현지 상황에 적합하게 존재하는 곳.

 

ICTs와 디지털 분할이 지구적 발전의 과정에 어떻게 관계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은 기술에 대한 것도 아니고, 정치에 대한 것도 아님. 그대신 그것은 지구적 정치와 지역적 실천에 관계.

 

-      지구화는 세계가 한 지역으로 경험되는 것

-      지구는 지역의 측면, 그리고 역으로 vice versa (Beck 1999, 101).

-      특히 젊은 이들은 지구적 의식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음.

 

지구적 정치 측면에서 지구적 경제의 확립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심오한 가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또한 지구적인 민주주의의 구조와 지구적 제도화를 겨냥해야.

 

-      UN 위원회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 권리 조약 실행의 감독은 빈곤과의 전투 (Robinson 2002) 를 위한 정치를 위한 세번째 원칙을 제안. 이들은 동일한 권리, 참여와 포함을 약속.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 원칙은 디지털 민주주의와 디지털 격차 해소의 참여에 대한 토론에 유용함을 증명.

-      그러나 단지 이데올로기적인 시작점으로서 이들 개념의 기능은, 그리고 그들의 실행에서의 수행은 현실적이며 지역적인 행동을 필요로.

 

è  Malina(1999, 38)가 제안했듯이, “규범적인 측면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이 부재한 곳, 그리고 시민들이 낮은 정도로 참여하거나 또는 공공영역에서의 그들의 대리인 그리고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제외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자율성, 더 많은 참여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응집력은 어두울 것이다”.

 

몇몇 희망 : ICTs의 실천적인 이용을 통한 수많은 지역적 실험 만들기.

 

-      특징

 

l  ICTs가 지역적 상황의 일부로서의 기능이 만들어짐. ICTs 자체의 채택은 중요하지 않음 : 그 대신, 기술들은 정보의 전송(날씨의 배포 또는 건강 관련 정보)인지 또는 보다 기술적인 해결의 필요에서의 문제(예로, 태양에너지에 의한 수중 펌프 작동)인지에 대한 실행적인 문제 해결을 하는 데 이용됨.

l  개발 활동의 이러한 유형의 두번째로 중요한 특성은 공식적 양식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러나 지역적 관심과 활동에서 자체를 분명히 하는 구두로 전송된 정보를 구성하는 지역적 지식의 활용.

l  세번째, 새로운 혁신들은 아마도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던 낡은 기술적인 해법에서 새로운 기술의 결합을 통해 창조되는 것은 전형적.

l  더욱이, 자주 합리적인 것을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새로움을 가진 영역의 매력으로서, 일반적으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영역에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침으로 환영받는 원칙이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에 부합하게 하는 기술 개발과 사용에 대한 초점화의 중요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

l  넷째, 연구자로서, 우리의 상아탑, 환상의 실험실과 행동으로부터 필드에서 자료를 모으고 지역들과 가까운 공동작업에서 해결을 창조하는 인류학자로서 등장하는 것이 중요.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실험들은 공유, 듣기 그리고 사회다양성으로서의 긍정적이며 개혁적인 가치를 실현.

 

공유 : 경제학 노벨수상자인 Amartya Sen (2002, 51)

 

-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졌을 것이라고 주장.

 

-      시장 메커니즘의 사용을 위한 공유의 생각을 현재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대조.

경제적 발전은 자본의 축적이나 국민 총생산의 성장이 아닌 공동 재화의 공유를 통한 인간 자유의 확대의 과정.

 

결론적으로, ICTs의 주도적인 의미에 대한 두 가지 논쟁

 

-      ICT 애호가들에 의해 유지된, 첫 번째 의견은, 경제와 지식을 위한 수단으로의 새로운 기술은 모두의 보편적인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선언.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모두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인터넷 시대로의 이동 전에 적용되어야 하는 보다 기본적인 필요를 위한 기다림은 불필요

 

-      ICT 비평가들에 의한 두 번째 견해는, 디지털 격차와 같은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기 전에 민주적인 정부, 식량 자원, 보건 의료, 사회적 안전과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필요 사항들에서의 구별짓기를 위한 절박한 필요를 강조.

 

그러나 ICTs는 기술뿐만이 아닌 기술. 사회주의 미디어의 개발과 사용에 하나의 대답이 놓여있음.

 

-      앞으로 사회주의 미디어와 그와 비슷한, 복지 구조로서의 사회적 발명들은(최근 발명으로서 기본 소득을 포함한) 역사상 어떠한 지점 보다 오늘날의 세계에 보다 많은 부와 번영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며,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기술적 분배가 이전 보다 더욱 깊게 나아갈 것.

-      이 상황에서 ICTs가 세계의 다른 부분에서 적용될 것이라는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 중요. ICTs 기술과 유사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문화적 가치와 특혜 뿐만 아니라 미래에 보여져야 할 것에 대한 디자인과 함께 형성.

 

ICTs에 의한 문화적 가치

 

-      주로 서구에서, 특히 북아메리카와 소비 자본주의에서의 그것의 동맹들에 구성.

 

-      ICTs에서 형성된 암묵적인 원칙 사이에 모두의 권리, 의사의 자유, 나이, 인종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치의 실행은 드문 일

 

-      ICTs로의 증식에 대한 가장 중요한 목표로서 상업적인 이익의 개념. 중복된 소유권에 의한 소수의 거대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ICT 산업에 놓인 희소가치는 특별한 목표.

 

è  그것은 수익성을 계산할 수 있을 때까지 친선대사로서 행동하는 이들 법인들의 관심사이다. 선의의 공급은 투자가 이익을 이룰 때까지 지속된다 이것은 사적 영역, 공공 영역 그리고 시민 사회 사이에서 협업하는 다양한 공식적인 조직들(유엔, 유니세프, 그리고 시민단체들처럼)의 작동에 대한 참작과 함께 기억되어야 하는 어떤 것.

 

가치 있는 질문으로의 접근 :

 

-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      유년기에 배웠던 지식, 기술 그리고 태도는 자주 이후 삶의 개인의 신뢰를 결정. 젊은 이들, 그들 자신의 특성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세계는 그들 자신의 문화를 지속할 수 있고 생각을 확장하는 지구의 다른 부분의 젊은 이들과 함께 연계될 수 있으며 서로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관점.

 

교육정책의 실패 : Alexander Bard and Jan Söderqvist (2002, xi-xii) :

 

-      911 테러 사례. 그들은 매우 잘 교육됐고 집에서 매우 많이 네트에 있었음.

 

-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님. 교육정책의 실패. 우리는 또한, 서방인들로서, 우리의 교육에 대한 이용과 오용에서 반영해야 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음. 이것을 위해 최근 신자유주의 쓰레기의 수십년간 우리는 사회와 세계 전부의 재화와 관계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세우는 우리의 교육정책에서 실패했다. 우리는 경제 성장, 인구 성장, 기술적인 팽창, 군사 대결,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성장, ICTs의 약속에서의 배우기처럼 어떤 상상가능한 빠르고 고착시키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성 위기의 상태의 과정

 

-      보다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가장 심한 해를 입힘. “이러한 현실화는 관찰로부터 중대한 의사결정 위치에 있는 광대한 다수의 사람들이 제3자의 자격을 갖는다는 것을 나타냄.”

 

시민 주도권과 협력을 위한 힘

 

-      결론적으로 우리는 미래에는 무식한 엘리트 혼자에게 힘을 주는 것 대신 사람들에게 교육자, 대학생들, 활동가들, 부모들 주도권과 그들의 참여 협력을 위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

 

-      디지털 리터러시 영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진은, 배움을 위한 힘이 지역적이며 지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교육적인 공동체들에게 주어질 때에만 형성.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허가를 부여할 수 있는 기관은 없음.

 

-      사람들은 이미 정식 학교교육, 공식적 정부 사회, 권위 있는 조건 그리고 등등을 넘어서 함께 작업하고 있음. 아무도 공공 정책으로부터의 그리고 스스로에 의한, 그리고 물론, 놀라울 수 있는 결과가 어떨지 모름.

 

è  하지만 John Holloway (2005, 215)가 언급한 대로, “불확실성의 개방은 혁명에 핵심적이다.” 아마도 또한 제도적인 플레이어들의 상태를 위해서 이 불확실성의 개방성은 그들의 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생산적인 행동을 위한 유일한 기회.

 

-      디지털 실천의 공동체에서의 확실한 문제와 해결에 대한 집중된 힘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은 사람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그리고 기술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통제하는 사회정치적인 변환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음.

 

è  Giroux (2004, 84)가 적절히 제안한 바대로, “비판적인 교육학의 한 가지 필수적인 것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잠재성 그리고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의제를 확장시키는 것으로서의 책임을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상의 투쟁,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 기관 그리고 정체성을 깊게 하는 것. 지식이 행동, 이행을 위한 구상, 그리고 사회적인 변화를 위한 배움과 무관하다는 배우지 못한 추정을 도와야만 한다. 이 경우 지식은 이해 이상이다; 개인적인 자율성, 그리고 사회적인 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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