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알바, 혹은 기름땀 짜는 디지털노동

네트워크된 노동의 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 [인권오름] 204호 나들터, 2010-05-26 중 (http://hr-oreum.net/article.php?id=1449)

[집단지성의 놀이와 노동] 댓글 알바, 혹은 기름땀 짜는 디지털노동

<편집인 주> 이번부터 이상한 연재가 하나 시작된다. 인권오름이 연재를 맡게 된 필자와 접촉한 것은 ‘뻔뻔한 미디어농장’이라는 모임의 포럼에서 얼마 전 발표된 “전파는 인권이다!”라는 글이 <액트온> 제8호(진보넷, 2010년) 에 실린 것을 본 후였다. 이 주제로 기고를 하나 요청하자, 조동원 님은 문제는 전파만이 아니라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 거리들을 쏟아냈다: 네 트워크된 노동, 감시 자본주의, 저작권 검열, 사유 소프트웨어, 오픈소스, 불법복제 전쟁, 전술적 미디어, 거리 낙서, 정치적 지도(그리기), 해킹(행동주의)문화, 자율적 보안, 구글제국, 인권 비디오, 모바일 미디어 행동주의, 인권 게임, 자유 소프트웨어, 소셜 사회(주의)적 미디어, 하드웨어 해킹, 다른 인터넷은 가능하다 등. 흠! 우리는 과감히 연재로 가보자고 제안했지만, 사실 이 연재의 일관된 주제가 무엇인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일단 좋게 보자면 이 연재의 주제는 열려 있다. 글들을 따라 인권/운동의 새로운 경계를 헤쳐 나가 보는 놀이 혹은 노동……

‘댓글 알바’라는 말을 처음 접한 건 2008년 촛불시위 때였다. 한나라당이나 정부기관들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친정부적인 댓글을 올리는 것을 두고 이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우리만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남한을 상대로 한 북한 통일전선사업부의 ‘인터넷 댓글팀’을 비롯해 미국의 ‘인조 풀뿌리’(Astroturfing), 중국의 ‘50원당’(五手黨), 러시아의 ‘웹여단’(Веб-бригады) 과 같은 것들이 있단다. 또한 ‘댓글 알바’는 정치적 여론 조작뿐만 아니라 제휴 마케팅이나 (온라인의) 입소문 마케팅 차원의 상업적 인터넷문화에서 더욱 성행하고 있다. 지난 2월 한 일간지에 “인터넷 품평 ‘알바’, 댓글 하나에 1000원”(한겨레 2010년 2월 10일자) 이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특정 업체에게 유리한 질문과 댓글을 동시에 달아주고 수백 만 원대의 홍보비를 받는 ‘바이럴[viral] 마케팅’ 전문 업체”들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기사는 거짓 홍보나 정보를 통한 소통의 왜곡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단순히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비난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그 댓글 알바 일을 하는 노동자의 입장에 서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스팸방지 문자입력 ‘캡차’, 문서 디지털화에도 기여하는 ‘리캡차’

우리는 새로 전자우편 계정을 만들거나 어떤 웹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할 때 혹은 댓글을 쓰려고 할 때 휘어지거나 찌그러진 문자나 숫자를 입력하라는 관문을 종종 통과한다. 내가 스팸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는 일인데, 적어도 내가 스팸을 자동 대량 발송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분 좋은 일도 아니고 귀찮기도 하지만, 우리는 스팸 방지를 위해 이를 자연스러운 절차로 받아들이고 있다.

위 사진:리캡차 웹사이트의 첫화면에 있는 리캡차의 원리 설명 그림

이런 스팸방지 문자입력 프로그램에는 대표적으로 ‘캡차’(CAPTCHA)가 있다. 2000년에 야후닷컴의 요청으로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루이스 폰 안(Luis von Ahn)과 그의 연구팀이 개발했다. 그리고 이 팀은 2007년에 한층 기능이 강화된 ‘리캡차’(ReCAPTCHA)를 선보였다. ‘리캡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기능이 추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문서 디지털화 작업과 결합되었다. 위의 그림이 보여주듯이, ‘리캡차’는 두 단어를 입력하라고 나오는데 그 중의 하나(위 그림에서는 morning)는 스캔한 옛 문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단어들은 밑줄이 쳐졌거나 휘갈겨 쓰였거나 흐릿해져 컴퓨터(스캐너)가 자동 인식하지 못해 디지털화가 안 된 것들이다. 이 때 ‘리캡차’는 스팸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알아보기 어렵더라도 최대한 정확하게 그 단어를 입력하려는 사람들의 지력과 노력을 이용해서 컴퓨터로 자동 인식되지 못한 저와 같은 단어들의 디지털화를 돕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기능의 경우도 옛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 자동으로 소리 인식이 되지 못한 부분이 활용된다.

이런 방법으로 ‘리캡차’는 1851년 처음 발행되기 시작한 뉴욕타임즈 전체 인쇄본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수많은 웹사이트들에 ‘리캡차’가 설치되어 왔는데, 2007년 한 해동안 6억 명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적어도 한번 ‘리캡차’를 거쳤고, 2009월 현재 하루 평균 3천 만 개의 ‘리캡차’가 해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첫 발행본부터 1980년까지의 뉴욕타임즈 인쇄본이 디지털화되었다. 한 사람으로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의 별 것도 아닌 문자 입력에 불과하지만 이를 모두 모으니 엄청난 일거리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리캡차’를 설치한 웹사이트에서 스팸을 막기 위해 모든 이용자들에게 (스팸 로봇 같은 자동 프로그램은 인식할 수 없는) 문자를 입력하도록 요청하는데, 그 문자 입력이 마침 아날로그 문서들의 디지털화를 돕는 일이라면, 그래서 “스팸도 막고, [전자] 책도 읽는”데 보탬이 된다면 잠시의 수고쯤이야 오히려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 그런데 ‘캡차’ 혹은 ‘리캡차’ 때문에 대량 홍보의 길이 막힌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히 이들에게 고용된 문자입력 노동자들에게는 어떨까?

‘기름땀 짜는 캡차공장’의 노동

‘캡차’라는 스팸 방지와 문서 디지털화를 돕는 기술이 개발되고 널리 활용되자 그에 굴하지 않고 대량의 광고 정보를 발송하려는 업체들은 ‘캡차’를 아예 대량으로 그러나 수동으로 풀기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이른바 ‘캡차공장’이 그것이다. 저임금 노동이 존재하는 나라들에서 이런 작업장이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평균 1분당 6개, 많게는 12개씩 ‘캡차’ 문자를 입력해 해결하면서 하루종일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접속이 안 되지만 인도에 있는 ‘캡차깨기닷컴’(DeCaptcha.com)의 경우 1천 개의 ‘캡차’를 푸는데 2달러를 준다고 하는데, 이는 정확하게 푼 것만 따져서 그렇다. ‘그림이윤닷컴’(pixprofit.com)은 1천 개당 1달러다. “함께 일하실 분”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 웹사이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스팸을 보내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림이윤닷컴’의 소개 페이지를 보면 이 일은 책이나 글을 디지털화하고 특히 시청각장애인이 ‘캡차’ 때문에 인터넷 접근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돕기 위해 이 사업을 한다고 되어있다.

위 사진:그림이윤닷컴 웹사이트의 첫화면 이미지

‘캡차공장’은 인도 말고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중국, 브라질, 나이지리아, 러시아 등에서 성행하고 있다. 이는, 주민번호 1개 당 1원씩하는 한국의 개인정보 산업과 함께 또 하나의 네트워크 지하경제를 이루고 있다.

집단지성의 인력시장과 노동현장

이러한 종류의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과 일하려는 사람들을 중매하는 노동력 시장도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닷컴의 ‘터키자동인형닷컴’(Mechanical Turk, mturk.com)은 2006년에 문을 연 온라인 인력 시장이다. 예를 들어 특정한 사진들에 제목을 다는 일거리도 있고, 특정한 업종의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을 찾고 그들에게 홍보 이메일을 보내는 일을 부탁하는 일도 있다. 아주 단순한 것들은 0.01~2 달러를 받는다. 홍보 이메일은 하나당 1달러다. 자기 웹사이트에 올라온 스팸을 모두 지우는 수작업은 시간당 3달러다. 국내에도 온라인 마케팅 업체들의 웹사이트를 통해 이런 식의 잘게 쪼개진 단순 지적 노동력들이 매매되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는 이렇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지경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모바일 기술을 이용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원격 노동이 가능하다. 2009년에 ‘모바일 외주생산 사업’이라는 것을 처음 벌인 미국의 ‘문자이글닷컴’(txteagle.com)의 경우, 저임금 노동력이 편재하는 나라들의 가난한 사람들이 소액을 받으면서 휴대전화로 실행할 수 있는 단순한 일거리(소프트웨어 현지언어화를 위한 단어 번역 등)를 창출하고 있다.

또 다른 노동현장을 가보자. 2007년에 생겨 2만 5천 명 정도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전복하고이득얻자닷컴’(SubvertandProfit.com)은 최근(2010년 4월 21일)에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유명하면 쏜다”(It Pays to be Popular on Facebook and Twitter)고 공지했다. 이에 따르면, 이른바 ‘군중외주생산’(crowdsourcing) 노동자로 봐야할 이 회원들은 그들이 페이스북에 가지고 있는 친구 숫자, 트위터의 추적자(follower) 숫자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진다. 미국에서 접속한 이용자일 때 50명 이하의 친구나 추적자가 있다면 페이스북 벽에 홍보글을 한 번 올리거나 트위터에 관련 내용으로 트윗을 한 번 하는 것으로 0.25 달러를 받지만, 같은 홍보 일이라도 350명 이상의 친구가 있을 때라면 그 두 배격인 0.55 달러를 벌게 된다. 처음 보는 아이디의 사람들로부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친구요청이 부쩍 많아지는 이유가 선거철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제 우리의 (온라인) 사회적 관계 그 자체가 돈이 되고 있다. 이미 인맥이나 네트워크라는 일상 용어에 내재된 금권적 관계가 사회적 미디어(social media)를 통해 (도토리니 콩이니 하는 가상화폐를 거칠 필요도 없이) 곧바로 현금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디지털과 노동과 인권과 …

인권의 차원에서 댓글 알바와 같은 디지털노동은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Zittrain 2009.12.8). 하나는 노동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반인권적인 노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다. 노동 계약이 주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데 노동법상의 노동자 인권 보호 조항들이 지켜질 리 없다. 예를 들어 아동노동의 금지는 무시될 수 있다. 노동과정(글올리기, 문자입력하기, 온갖 클릭 등)은 원격 모니터링 형태로 감시되고 있고, 댓글과 문자입력 및 추천과 그 모든 일들이 특정한 회사에 고용된 노동 행위라는 사실은 ‘영업비밀’로 지켜져야 한다. 지트레인(Zittrain)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노동자들이 누구를 위해 왜 일하는지 알지 못한 채 노동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는 독약이나 폭탄에 사용되는 새로운 화학물질을 합성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독재 체제의 지도자로부터 전 국민의 얼굴 사진과 시위대를 촬영한 사진을 대조하는 작업을 맡을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노동이 이미 2000년대 초중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지트레인은 이것들이 최근의 금융 위기 이후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두에 언급한 댓글 알바 기사가 보도되었던 올해 2월, “‘반나절’ 초단시간 근로자 100만 명 육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어떤 노동이냐의 문제가 중요할텐데 이러한 반인권적 불안정 디지털 노동이 점차 많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떼내기 힘든 인터넷은 놀이터이지만 동시에 기름땀 짜내는 공장이자 인력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digitallabor.org 참조). 스팸방지를 위한 ‘캡차’ 풀기 놀이는 어딘가에서는 고역의 노동이기도 하니 말이다.

참고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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