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문화: 카피레프트운동과 해커공동체의 유리

아직 본격적으로 파보지 않았지만, (한국의) ‘카피레프트운동’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를 반저작권운동, 반자본주의운동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아무래도 리차트 스톨만, 로렌스 레식 등의 자유주의적 운동의 영향 때문이겠다. 전자의 경우, 아나키스트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자유시장 논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후자는 오히려 그것을 위해 자유문화를 주창하고 있다. 물론, 주창자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최근 레식의 블로그에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레식의 입장이 어떻든 그런 논점들이 생기기 마련인 모양이다. 하여, 자유소프트웨어운동이나 자유문화를 주창한 사람들의 사상이 어떻든 우리의 맥락에서 창조적으로 변용하면 좋은 일이다.

애매하게 넘어간 위의 몇 가지 문제들은 나중에 자세히 정리해 보기로 하고…

한국의 해커문화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혹은 범죄사회학의 입장에서만 연구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해커공동체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밝힌다는 논문이 있어 반갑게 찾아 읽었다.

윤여상. 2001. 한국 해커공동체의 정치사회적 특성 연구.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여기서 전문을 볼 수 있다: http://korea.gnu.org/people/chsong/yys

경험적 연구 방법으로 한국의 리눅스 이용자들, 자유소프트웨어운동가들, 네트워크 해커들에 대한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 특성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런 만큼 풍부하고 정교한 한국 해커문화에 대한 현장기술(지)가 되고 있지는 못해 아쉽다. 그와 무관하게 그 결론 중의 하나가 상당히 흥미롭다. 한국의 카피레프트운동이 그 기원과 지향의 차원에서 그 실천가들이라고 할 해커(공동체)와 연관을 맺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진단을 하는 대목이다.

정보연대가 카피레프트를 정보 생산자 네트워크의 철학적 표현으로 이해한 것은 옳은 것이며 카피레프트의 중심지인 GNU/FSF는 핵심적인 정보 생산자 네트워크일 것이다. 따라서 정보 운동으로서의 카피레프트는 정보 생산의 중요한 실천자인 해커들과 연관성을 가져야 했으나, 이 실천자들을 도외시하고 이론적 자원만을 가져와 지적 재산권 철폐 운동에 결합시킴으로써 적극적인 실천자를 잃어버린 운동으로 전개되었고 모호한 상태에서 제대로 확산되지 못했다. 정보 운동의 일환으로 카피레프트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카피레프트를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서 넘어 해커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커들과 유기적 연계를 가지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5) 대안적 정보 운동으로서의 카피레프트의 수용과 변용‘ 부분, 밑줄은 인용자; 아래 역시)

결론 부분에서도 다시 언급되는데,

카피레프트가 GNU/FSF와 리눅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해커들이 바로 카피레프트의 핵심적인 실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과는 유리된 운동으로 전개됨으로써 실천자 없는 운동을 만드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권력 또는 대안적 사회체제 문제와 관련하여 진보적 정보 운동 단체들과 해커공동체들의 연계 활동이 요구된다.

이 논문에서는 딱히 한국의 해커공동체가 적극적인 자기 정치이념을 형성하지 못한 원인이 본격적으로 규명되고 있지는 않는다(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카페레프트운동(권)에서 그들을 정치적 주체화하는 기획을 갖지 못한 것을 진단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카페리프트운동에서는그렇게 하지 않/못했을까?

나의 추측은 이렇다: 위 연구자가 “우리나라의 경우 좌파적 진보 진영에서 반저작권 운동의 일환으로서 스톨만의 카피레프트를 이론적 기반으로 받아들여 좌파적 정보 운동과 결합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학생 운동과 좌파적 진보 진영의 침체와 맥을 같이 한다”고 진단한 것을 받아들인다면, 당시 학생 운동과 좌파적 진보 진영 일부가 카피레프트운동을 주창하고 나설 때, 그들의 운동권 문화가 해커문화와 잘 조응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부족하나마 자유소프트웨어 혹은 공개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해커들도 없지 않았던 것 같고 네트워크를 침입하는 실력을 가지면서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해커가 없지 않았을 텐데, 공통의 이념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조직화나 운동/실천의 방식에서 서로 궁합이 맞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운동권의 조직 문화는 그것이 맞서 싸우려는 권력이나 시스템을 닮아 있으니, 당시 운동권의 입장에서는 개인주의 문화를 갖기 보통인 해커공동체를 운동 주체로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위와 같이 한국의 카페레프트운동(사)와 해커문화에 대한 진단을 받아들인다면, 한 가지가 설명되고, 한 가지 과제가 생긴다.

북미, 남미, 유럽 쪽에서는 비교적 활발한 (정치적) 해커운동, 해커행동주의가 한국에서는 왜 찾아볼 수 없는가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 “GNU/FSF의 자유소프트웨어운동과 GPL이 새로운 정보 운동의 수단으로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추세이며 핵티비즘[해커행동주의]이 네트워크 해커공동체들의 새로운 이념으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리눅스 공동체와 네트워크 해커공동체 모두 독자적인 해커 이념을 확산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결론)는 것이다.

당시 카피레프트운동 (주체들)이 해커공동체를 (정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적 주체로 인식하고 일정한 조직화 작업을 했더라면 좋았겠다. 사실, 이는 지금도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저 논문의 주장처럼 당시 당시 카피레프트운동은 그런 인식이 없었던 것인가? 나의 추측처럼, 일단의 인식이 있었다 해도 서로 뒤섞일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유리되었던 것인가?

과제: 현재의 시점에서 그 ‘실천가’들은 해커들로 국한되지 않는다고 본다. 여전히 해커들, 특히 해커행동주의의 주체들이 (운동 집단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저작권, 특허권 등이 정보의 공유, 지식의 확산, 자율적인 문화/생활을 광범위하게 옥죄고 있고 이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다양한 풀뿌리 주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네티즌, 이용자, 또래(p2p) 등

따라서 지금의 카페레프트운동은 해커공동체, 네티즌, 이용자, 또래와 함께 실천적인 반저작권운동, 반자본주의운동을 조직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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