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는 해커를 꿈꾸는가 – 자본주의 시스템 해킹하기
“기술의 표면, 통제와 저항의 이면: 기술 통제와 핵티비즘“, 중대 대학원 신문 [302호], 2013.09.04.
위의 편집된 기사와 다른, 애초 글쓴이의 원고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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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는 해커를 꿈꾸는가 – 자본주의 시스템 해킹하기
인터넷이 지금껏 힘없고 불우했던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사회에 울려퍼지게 돕는다며 환호하지만, 그것은 반쪽만의 이야기다. 슈나이어(B. Schneier)가 지적하듯이 인터넷은 약자만이 아니라 모두의 권한을 강화하고, 권력자들은 지배 체제의 유지·강화를 위해 인터넷을 더욱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 미 정보기관(NSA)이 전자 감시 시스템(PRISM)을 구축해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를 감시해 왔고 거대 정보기업들이 이에 협조해 왔다는 사실이 나머지 반쪽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감시 시스템은 단지 프라이버시 침해만이 아니라 고도의 사회 통제 방식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반론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어느샌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게 되고 결사의 자유도 저버리면서 자유로운 연합의 필요성과 가능성도 희박해지는 것이다.
지배 권력이 우리 모두의 삶을 샅샅이 들여다 보면서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전례없이 통제할 수 있는 자동화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사실 프로슈머나 손수제작물(UCC)과 같이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가 정보 공개·공유를 통해 문화생산에 참여하는 일이 긍정적인 사회 변화로 주목받지만, 소비자가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곧 노동자에게 가해졌던 감시와 통제가 이제 소비자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가시적인 통제나 억압의 형태가 아니라 편리한 생활이자 새로운 문화로 수용되도록 하면서 우리가 민감하게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술적 통제는 이를 위한 특별한 감시 기술이 쓰이거나 특정한 누군가가 기술을 오남용하는 차원보다는 정보기술 일반의 설계와 이용 방식 자체에 내재된 채로 작동한다는 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개인용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기가 신기하고 편리한 생활 필수품이 되는 동시에 언제나 이미 감시와 통제를 위한 단말기로 설계되고 개발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손에 들려진 각종 기기 안에 기술을 통한 진보, 정보 홍수의 복잡성에 대한 제어, 시장경제의 가치와 신자유주의적 문화의 논리가 내장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게 기술 지배와 통제는 비가시적이고 보편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현실에 맞서는 보다 근본적인 저항의 방식과 보다 창조적인 대안의 길은 없는가? 이를 위해 우리는 러다이트와 해커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러다이트와 해커 모두 자본주의의 새로운 기술 발전 과정에 개입하고 기술의 민주적 변화를 모색한 주체로 볼 수 있다. 데세리스(M. Deseriis)에 따르면, 러다이트가 산업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시기에 기계제 생산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개입했다면, 해커는 정보자본주의가 부상하는 초기 단계부터 정보혁명을 앞세운 자본의 새로운 기술적 구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러다이트는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무작정 기계를 파괴하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임금 삭감이나 실업을 가져오는 기계 도입의 문제에 우선 고용주와 협상을 시도했고 의회에 청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제안과 요청이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그들은 러드(Ludd)라는 가상의 집단적 이름 아래 곳곳에서 공장의 기계를 파괴했다. 작업장의 기계는 노동자에게 사회적 진보와 발전이 아니라 장인적 숙련과 몸의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고 일자리와 생계수단을 빼앗는 자본의 첨병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의 개선과 사회정치적 개혁을 요구하기 위해 다른 무엇이 아니라 기계를 파괴하는 전술을 채택한 것은 산업자본주의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서 공장 생산 시스템의 위계적 노동 통제를 위해 설계된 기계의 정치적 속성을 간파하고 그에 대항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더버그(J. Söderberg)의 해석처럼, 기계 파괴의 전술은 또한 노동자가 보다 민주적이고 대안적인 기술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 해커는 지배적 기술을 거부하기보다는 그것을 재전유한다는 데서 달라진다.
정보자본주의 체제는 정보 권력의 확대와 정보의 사유화·상품화를 위해 전 국민에 대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감시, 국가와 기업의 비밀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검열, 정보의 배타적 소유권으로서 지적 재산권의 강화를 도모한다. 이는 그 누구보다도 해커의 분노와 저항을 샀다. 애초 해커는 컴퓨터의 작동 원리에 빠져들어 탐구하며 더 낫게 개선하는 데 오로지 관심을 쏟는 이들로 흔히 컴퓨터광이나 마니아, 컴퓨터 도사로 불렸다.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철저한 앏에 즐거움을 느끼며 파고 들면서 그에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해커는 정보자본주의의 명령 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알고리듬에까지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 과정 중에 흐르는 정보가 비밀에 훱싸이는 사유물로, 허가를 받아야 이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또 그에 개입해 바꿔 낼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 해커 문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에 대한 통달의 욕망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정보기술의 자유로운 접근과 자율적인 이용은 따라서 그것을 가로막는 권력과 지배적 기술 구조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보자본주의에서 해커가 갖는 고유한 기술정치적 특성이다.
1950-60년대 엠아이티(MIT)에서 처음 컴퓨터 해킹이 시작될 때 냉전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자유로운 접근을 가로막았고, 1970-80년대부터는 그에 더해 지적 재산권 체제가 정보의 공유를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정보사회의 내전이 불붙기 시작했다. 해커의 분노와 반격을 관통한 것이 바로 ‘정보는 자유롭기를 원한다’로 표현되는 해커윤리다. 정보의 자유는 정보기술을 통한 사회 통제와 정보를 상품화하는 경제 체제에 근본적 도전이 될 수밖에 없고, 바로 그런 이유로 해킹은 정보자본주의에서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어 온 것이다. 기술 자체가 좋아서 그에 빠져들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여간해서 이겨낼 수가 없다. 정보산업은 그들을 이겨내기보다는 적극 영입하고 환영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고, 실리콘밸리에 터잡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이 해커 문화와 신경제를 뒤섞으며 세계 유수의 정보기업으로 부상한 것이다. 사실 해킹은 정보의 교환가치 설정과 실현은 방해하더라도 그 사용가치의 창조에 있어서는 뛰어난 생산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 아예 배제할 것이 아니라 그 정보 상품 생산과정에 포섭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커는 정보자본에 포섭되면서도 자신의 기술 놀이와 통달의 욕망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정보기술의 통제와 정보 사유화에 맞설 수밖에 없다. 임노동과 상품 관계의 외부에서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배포하는 자유소프트웨어 해커 공동체는 윈도나 맥오에스의 특정한 브랜드만이 아니라 정보 상품 일반과 경쟁하며 코뮌적 정보 생산양식을 확산시켜 왔다. 또,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무단 접근이나 소프트웨어의 무단 복제를 일삼는 컴퓨터 지하세계도 정교한 접근 차단이나 복제 방지 기술을 깨뜨리는 것 자체에 오락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여타 오락의 상품화된 형식을 거부한다.
이와 같이, 산업자본주의가 부상하던 시기 러다이트에게 강철 기계가 노동자의 자율성 박탈과 노동의 소외를 뜻했고 자본가의 전유물이었을 뿐이라면, 해커에게 정보기술은 자본이 소유한 생산수단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놀이도구이자 독자적인 생산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러다이트가 산업자본의 기술적 구성에서 기계 파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정보자본주의에서 해커는 지배적 기술과 통제를 거부하고 그것을 훼방놓으면서 동시에 해방을 위한 대안적 기술을 창조하는 유력한 기술 저항의 주체로 나타난 것이다. 해킹행동주의(hacktivism) 네트워크인 어나니머스(Anonymous)의 경우, 거침없는 사이버 공격을 퍼붓고 집단적 가명을 쓴다는 차원에서 러다이트를 닮았으면서도 정보 네트워크 기계가 자기 존재의 기반이기도 하기 때문에 러다이트와 다르게 그 전체를 파괴하는 대신 이를 감시·통제하고 사유화하는 정부와 기업을 목표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기술적 구성에 대한 개입과 전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다이트와 해커 모두 민주적 기술 변화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그 의의가 온전히 평가되기보다는 주변화되고 범죄시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러다이트라는 말은 진보에 대한 보수적 거부, 기술에 대한 무모한 반항을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고, 해커 역시 정보혁명의 영웅이라고 했다가 언제부턴가 정보사회의 역기능이나 침해, 컴퓨터 범죄자로 재현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와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그러나 그 어떤 전문 기술자 못지 않게 기술에 통달한 해커들이 러다이트처럼 지배적 기술에 가장 민감하게 저항하면서도 그와 다르게 대안적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기능하는 의의가 있는 한 그 자체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감시·통제의 자동화와 보편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폐쇄회로를 단락시키며 창조적 대안을 만들고 있다. 지구적 감시 시스템이 우리의 표현과 결사와 연합의 자유를 더 이상 옥죄지 않도록 하는 저항과 대안의 기술을 당장에라도 써보고자 한다면, 감시의 ‘프리즘’을 깨는 해커의 전리품을 우선 둘러보자 – https://prism-brea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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