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권오름 212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0-07-21 (http://hr-oreum.net/article.php?id=1508)

반감시 놀이: 사이버망명, 사이버자살, 사이버교란, 해킹행동주의

인터넷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어 분석되고 있다는 감시정보체계(‘인터넷 모니터링 시스템’)와 국가기구의 사찰이 또 다른 사이버망명의 길을 재촉하는가. 2008년 말 대대적인 사이버망명 현상은 주로 정치적인 검열과 감시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정보 미디어 서비스로서 인터넷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잠금효과가 세고 이전비용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우리의 이용 습관이 바뀌는 일은 여간해서 쉽게 발생하지 않는데, 인터넷 이용에 대한 정치적 검열과 감시가 오죽했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미운정고운정 다든 포털을 뒤로하고 국경이 없다던 사이버세계에 망명이라는 정치적 집단행동을 감행했겠는가. 그런데 일부 사이버 난민들이 찾아든 곳은 경제적인 검열과 감시 차원에서 단연 업계 선두를 놓치지 않으려는 구글닷컴이었으니, 그에 이어 당신수상기닷컴(혹은 유튜브, youtube.com), 재잘거리닷컴(혹은 트위터, twitter.com), 얼굴책닷컴(혹은 졸업앨범닷컴, 페이스북, facebook.com) 따위였으니, 사이버망명 생활은 오늘도 안녕한가?

무료 서비스의 사업모델은 감시

인터넷 서비스가 무료가 되는 것은 그 사업모델이 감시이기 때문이다(Saxon). 지금까지 인터넷 기업들의 돈벌이 방식을 보면 기본 기능은 무료, 더 좋은 기능은 유료로 제공하는 차별화(Freemium), 혹은 이용자 행동분석을 통한 감시(behavioral surveillance)를 유력한 사업모델로 한다.

구글닷컴의 경우 매출의 97%가 인터넷 광고에서 나오는데, 각 이용자에 따라 내용이 바뀌는 ‘맞춤형 광고’로 유명하다. 이를 위해 잠재적 소비자인 거의 모든 인터넷 이용자의 나이, 성별, 직업, 소득, 병력, 학력, 취미, 흥미, 선호, 성향, 관계, 활동, 행동, 일정, 위치 등 될 수 있는 한 모든 정보가 구글닷컴의 서버에 수집된다. 따라서 우리가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동안 우리가 입력한 연간 수천 억 건의 검색어와 검색 결과는 어딘가에서 자동으로 수집·분석되고, 쥐메일 계정으로 우리가 보내고 받는 메일 내용에서 추출된 주요 단어들도 이를 위해 활용된다. 쥐메일이 처음으로 기가바이트(GB) 단위의 메일용량을 무료로 주면서 어떤 메일도 삭제할 필요 없다고 선전한 이유를 알만하다.

이렇게 구글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두 가지 데이터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우리가 로그인을 하고 검색을 하고 글, 사진, 음악, 비디오 등을 보고 듣거나 올리는 모든 활동과 그렇게 해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 맺는 여러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정보들이다. 또 하나는 그러는 사이 보이지 않게 내가 사용 중인 웹브라우저의 쿠키 아이디와 구글의 서버가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축적된 로그 데이터인데, 이에는 웹페이지 방문(날짜, 시간, 내용), 이전 검색 기록, 아이피 주소, 우리의 웹브라우저를 식별할 수 있는 쿠키 아이디, 기타 메타데이터 등이다(Mitchell).

이렇게 수집되고 분석된 각 이용자에 대한 정보에 따라 광고 내용이 달라진다는 ‘특정된 광고’(targeted advertising) 혹은 ‘맥락적 특정화’(contextual targeting), 그에 더해 이용자가 이전에 본 웹페이지를 분석하여 광고를 때리는 ‘관심사에 따른 광고’(interested-based advertising) 등과 같은 최신의 ‘행동분석 광고’(behavioral advertising)가 실행된다. 이런 알듯모를듯한 전문 용어들은 바로 그런 전문성으로 미화되어 있지만, 우리 모두의 정보와 웹 이용 방식을 분석한 감시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구글닷컴이 단연 감시 기반 개인정보 산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만큼 주로 들먹여지지만, 얼굴책닷컴이나 재잘거리닷컴 등 대부분의 사회적 미디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구글이 엄마보다 나를 더 많이 알고 있고, 얼굴닷컴은 누가 누구랑 곧 사귀게 될 지 먼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진설명구글감시(google-watch.org)의 그림모음

다시 말하자면, 인터넷의 무료 서비스로 돈벌이하는 방법(사업모델)은 광고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광고를 가능하게 하는) 감시다. 예전에는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는 반신반의였다면, 이제 공짜는 없을뿐더러 엄청 비싼 댓가를 치루는 일이 되었다. 이렇듯 어느새 우리의 일상생활이 된 인터넷 검열과 감시에 맞서 우리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전술적 놀이를 몇 가지 정리해본다.

사이버자살

누구나 자유롭게 가서 쓰는 웹사이트라면 그저 안 가고 안 쓰는 것으로, 회원제라면 회원 탈퇴를 하는 것으로 그 곳의 검열과 감시를 거부하고 항의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다. 2008년 촛불시위가 불붙기 시작할 즈음에 친정부적인 뉴스 페이지 편집과 비판적인 글의 무단 삭제가 빈번했던 네이버닷컴에 대해 집단적인 회원 탈퇴 움직임이 있었다. 그 규모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비판과 집단 탈퇴가 이어지면서 네이버닷컴은 그 첫화면에 수 천만 원의 광고 자릿세를 포기하고 촛불시위에 대한 특별 페이지를 배치했으니 이로써 그 위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존 미디어를 놓고 보면, 최근 상황에도 적합한 ‘한국방송(KBS) 시청료 거부운동’이나 ‘티브이 끄기운동’이 비슷한 맥락의 이전 사례들이다. 그리고 네이버닷컴 탈퇴운동이 특정한 웹사이트에 대한 끊기 혹은 안 쓰기 전술이라면, 애플사의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는 [디지털]‘탈옥’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이는 그 운영체계(OS)를 애플사가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바꿔 쓰는 일종의 해킹을 가리키는데, 감옥과 탈옥이란 비유가 사용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웹2.0의 다양한 서비스들 – 사회적 미디어(social media) 혹은 사회적 관계맺기 웹사이트(SNS)가 그 본성상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행동정보, 관계정보를 밑천삼아 돈벌이를 하다보니 그에 반발한 ‘웹2.0자살’이나 ‘사회적 네트워크 자살’이 새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사이버자살이라고 불러보자. 이는 거의 반강제로우리의 신상정보와 웹 기록이 공개되고 남용되는 것에 대한 항의로서 사회적 미디어에서의 회원 탈퇴 행동을 가리킨다.

주로 얼굴책닷컴에 적용되는데 현실세계의 개념을 다소 섬뜩하게 가상세계에 적용한 과장된 비유임에 분명하지만, 사이버자살이 제기된 배경은 엄밀한 의미에서 제대로 회원 탈퇴도 못하게 만들어놓은 설정 때문이다. 사회적 미디어로 돈벌이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용자들이 올린 ‘콘텐츠’들과 관계맺은 친구들의 정보, 그들과 나눈 대화 모두가 끊김없이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하는데 누군가 그 모든 것들을 지우고 탈퇴해버리면 그 관계망에 심각한 단절의 구멍들이 뚫리기 때문에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다시 회원가입하실 경우를 위해” 우리의 개인정보와 활동기록들은 즉시 삭제 대신 계정의 “비활성화”로 남겨진다. 그래서 우리의 신상정보, 우리가 올리거나 퍼나른 글, 댓글, 사진, 음악, 비디오, 우리가 친구 맺거나 가입하여 대화한 사람들이나 집단들에 대해 얼굴책닷컴 등의 해킹을 통해 즉시 삭제를 돕는 이른바 사이버자살 사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얼굴책닷컴의 저열한 프라이버시 정책이 점차 악화되면서, 2009년 말과 2010년 초에 ‘자살 기계’(suicidemachine.org)와 ‘할복 자결’(seppukoo.com) 사이트가 유행한 바 있고, 무슨 국제 공동행동의 날처럼 2010년 5월 31일을 ‘얼굴책닷컴 끊는 날’(QuitFacebookDay.com)로 정해 사이버 동반자살이 감행되기도 했다. 함께 자살하겠다고, 즉 회원 탈퇴하겠다고 서명한 사람들은 3만 명 이상이었다. 상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지만,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무려 35%인 5억 4천만 명이 여전히 얼굴책닷컴에 머물러 있는 중이다. 나의 친구들 대부분이 혹은 ‘민’주주의의 그 인민들이 아직 거기에 있으니 발걸음이 쉽게 떼지지 않는다.

얼굴책닷컴의 감시
“빅 브라더 얼굴책닷컴이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 출처: 구글감시(google-watch.org)의 그림모음

그래서 사이버자살은 문제가 되는 구조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탈퇴, 탈옥, 사이버자살을 감행한다면 강력한 압박이 되겠지만, 왠만해서는 그렇게 되기 힘들고, 그렇게 되더라도 그 검열과 감시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는 아직 묻지도 않은 것이다.

사이버망명

문제가 있는 웹사이트나 도구를 그만 쓰기로 하고 그 대체재를 찾아쓰는 갈아타기 놀이도 있다. 2008년 말 촛불시위 정국에서 널리 행해진 사이버망명은 정치적 발언과 결사 모의를 하지 못하게 노골적으로 막아서는 검열과 감시에 공분하며 집단을 이뤄 특정한 미디어를 버리고 다른 미디어로 갈아탔던 일이었다. 기존 언론 미디어를 놓고 보자면, 2008년에 조직돼 지금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진알시’(진실을 알리는 시민, iruum.net/jinalsi)이 하는, ‘조중동’ 안 보는 대신 한겨레·경향신문 보자는 운동이 사이버망명과 유사한 접근이다.

당시 사이버망명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전자우편과 같은 개인적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경우, 한국의 상업적 대형 포털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전자우편을 쓰지 않고 외국의 전자우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주로 구글닷컴의 쥐메일이 선택되었다. 반면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공간의 경우, 주로 다음 아고라를 대체할 수 있는 온라인 토론장이 관건이었는데 기존의 것을 찾아쓰거나 아니면 아예 직접 새로 만들자는 식이었다. 외국에 서버를 두고 새로운 망명지 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지만, 주로는 구글닷컴의 메일링리스트인 그룹스,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의 광고주 목록 공유를 위해) 구글 문서도구가 사용되었다.

아래에 나올 해킹행동주의는 검열과 감시로 망가져가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대안을 만드는데 초점이 있다면, 사이버망명은 일단 피하고 옮겨 가는데 초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옮긴 곳이 대안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구글닷컴이 주요 망명지로 오인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국내의 법적 규제를 벗어날 수 있는 외국의 서비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탓이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구글닷컴은 앞서 보았듯이 대안이기는커녕 더 세련된 감시 체계이다.

사이버교란

사이버자살과 사이버망명이 공히 가지는 한계는 기존의 구조가 갖는 검열과 감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쓰지 않거나 다른 것을 찾아쓰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다면 다르겠지만 보통의 경우 기존 미디어의 검열과 감시를 바꿔내는 행동과는 크게 상관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제안된 것이 ‘자살폭탄’이다. 지난 2010년 4월에 또 다시 얼굴책닷컴이 이용자들의 신상정보와 온라인 관계맺기 활동의 궤적을 더 많이 공개한다고 하면서 논란이 됐을 때, 한 메일링 리스트(iDC)에서 제안된 것이 ‘얼굴책닷컴 자살(폭탄) 선언’(Facebook Suicide (Bomb) Manifesto)이었다.

사이버자살이 침묵이라면 ‘사이버자살폭탄’은 그와 반대로 일부러 무의미한 잡음을 내서 사이버세계의 지배적 질서를 방해하는 것이다. 이는 검열과 감시의 정보체계를 계속 쓰면서도 그 검열과 감시 방식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다. 즉, 검열과 감시에 대항해 그 지배적 핵심을 훼방하거나 교란하는 전술적 놀이다. 이를 사이버훼방 혹은 사이버교란이라고 불러보자. 이는 문화운동의 한 전술로 자리잡아온 ‘문화훼방’(culture jamming)의 맥을 잇는다고 볼 수 있다. 꼭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웹사이트에서는 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입력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1900년에 태어났다고 쓰기도 하는 것이다.

갈아타는 사이버자살에 비해 타고넘는 사이버교란은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개입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이다. 유쾌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지배적 구조에 의존하는 행동이라는 점도 한계다. 그래서 검열과 감시의 지배 구조를 교란하며 대항하는 일은 그에 대한 대안을 창조하는 일과 결합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해킹행동주의

바로 그 대안의 창조를 위한 유력한 정보기술운동이 해킹 혹은 해킹행동주의다. 해킹행동주의(hacktivism)는 해킹(hacking)과 행동주의(activism)가 결합된 말이다. 사이버자살, 사이버망명, 사이버교란 등 거의 모든 사이버 전술 놀이가 직간접적으로 해킹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검열과 감시에 대항하는 해킹행동과 그 과정에서 생산된 프라이버시 지킴이 도구들이 수없이 많다. 단적으로 구글검색과 관련된 것만 두 개 꼽아본다. ‘구글감시’(google-watch.org) 에서 개발한 스크루글(scoogle)은, 구글닷컴이 우리의 모든 검색 기록을 집적하여 남용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구글의 검색엔진을 그대로 쓰면서도 그러지 못하도록 검색 과정을 암호화(SSL)해서 우리의 검색 활동이 익명 상태로 보호되는 검색도구이다. 가끔 구글닷컴이 차단하여 하루 이틀 못쓰게 되기도 하지만, 스크루글의 검색 페이지(ssl.scroogle.org) 혹은 보다 편하게 불여우(firefox, mozilla.or.kr/ko)라는 브라우저의 부가기능(Scroogle SSL search)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이 역시 불여우의 부가기능으로 쓸 수 있는 ‘나를 추적-마’(track-me-not, trackmenot.org) 이다. 그 원리는 사이버교란의 방식인데, 우리가 검색한 것뿐만 아니라 자동으로 별 의미없는 수많은 검색어들을 구글 검색엔진에 제공해서 어떤 것이 우리의 진짜 검색어인지 헷갈리게 하여 구글닷컴의 감시와 데이터-프로파일링을 막는 것이다.

해킹행동주의는 문제가 되는 중앙집중적 정보 통제 구조, 익명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형 포털 사이트, 우리의 개인정보와 일거수일투족의 기록이 어떻게 수집·분석·남용되는지 비밀에 붙여진 영리기업의 무료서비스에 대한 대안을 손수 만든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여기서 손수 만든다는 것은 꼭 내가 모든 것을 다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할 줄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후원하고 연대하는 일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되었지만, 2008년 촛불시위의 정세 속에서 대안적 포털사이트를 만들려는 기획들이 여럿 제안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5월 얼굴책닷컴 논란이 있을 때 사이버자살이나 사이버교란 말고도 얼굴책닷컴에 대한 대안으로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하고 자유소프트웨어로 만드는 ‘흩어진 사람들’(Diaspora)이라는 사회적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이 제안되었다.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4명의 대학생들이 추진한 이 작업은 사회적 논란이 격화된 때를 잘 타며 인터넷 소액 기부 모금 방식을 통해 순식간에 2억이 넘는 돈을 모으며 화제가 되었다(joindiaspora.com). 하지만 이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더라도, 이미 운영되고 있거나 개발되고 있는 대안적 사회적 미디어 사이트들이 수 십 가지나 된다(GNU Social/Project Comparison 참조).

어울려 놀기

감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이버세계의 망명지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정치적 망명과 다름없이 계속되는 투쟁의 장소다. 그러니 사이버망명은 하나의 대응 방식일 뿐이다. 여기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것들 말고도 다양한 저항 방식과 대안 창조의 전술적 놀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각각의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전술적 기술 – 놀이 – 문화가 곳곳에 번져나가고 있다.

참고한 것들

  • Saxon, Elijah, 2009.11, “The Price of Free“[무료/자유의 가격], Social Text

관련 글:

2007년에 완성되었지만, 제작자의 고집으로 개봉되지 못하고 묵혀있던 미국의 한 해커(Adrian Lamo)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두 달 전에 비트토런트로 유출되어 널리 “개봉”되었다!

처음에는 제작자 압력판이 유출되었는데, 감독이 이왕 유출될 바에 감독판으로 되면 좋았겠다고 한 후 감독판이 또 유출되었다!

아래는 예고편:

비트토런트 내려받기 – OneBigTorrent.org에서 Hackers Wanted aka Can You Hack It [Director's Cut Unrelease]

한글자막이 아직 없지만! 영화의 내용은 해커에 대한 주류미디어와 대중의 오해를 씻으려는 것인데, 그러면서 애국주의적인 편향을 띠는 것은 문제적이다.

이것이 감독 – 샘 보조(Sam Bozzo)가 만든 첫 작품이었고, 이 감독은 두 번째 영화로 <푸른 금: 세계 물 전쟁(Blue Gold : World Water Wars)>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비트토런트로 유출되었다.

여기서 “불법다운로드”로 받아볼 수 있다 – 역시 OneBigTorrent.org에서 Blue Gold World Water Wars


흥미로운 것은 비트토런트로 영화파일이 유출되는 것에 대한 이 감독의 입장이 바뀌는 부분이다. 이 재미난 이야기는 곧 쓰기로 하고…

(아래의 기사들 참조)

Unreleased ‘Hackers Wanted’ Movie Leaks To BitTorrent, May 20, 2010 | TorrentFreak

Lost Hacking Documentary Surfaces on Pirate Bay,  Wired.com

Director Sam Bozzo On BitTorrent and the Movie Industry, TorrentFreak, 2010.6.13.

관련 글:

“국내 유일의 미디어 아트 웹진 – 앨리스온”(aliceon.net)에 2010년 7월 6일에 올라온 글이다: 불법복제시대의 예술작품 _column (http://aliceon.tistory.com/1535)

앨리스온에서는 참조한 것들에 하이퍼링크가 없는데, 아래에 옮긴 것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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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복제기술의 민주화

15세기 이래 인쇄술의 발전으로 문자 정보의 대량복제가 계속 되는 가운데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는 소리 정보, 그리고 영상 정보의 대량복제가 가능해진다. 문화연구자인 발터 벤야민이 주목한 기계복제나 미디어연구자인 마샬 맥클루언의 전기복제는 산업자본주의 체제에 조응하는, 원본과 다름없는 대량의 자동 복제기술을 뜻한다. 그러나 그 복제기술과 복제과정은 아직 전문적이다. 일정한 숙련과 전문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때까지 정보·지식에 대한 불법복제 해적질은 합법적인 원본 복제자와 크게 다름없는 전문 복제 수단을 갖춰야 가능하다.

오늘날 디지털과 네트워크 기술에 힘입은 정보자본주의 체제의 복제는 문자, 소리, 영상 각각 혹은 혼합된 정보의 동시적이고 분산적인 대량복제다. 대량성, 자동성에 더해 이전에는 부분적이었던 동시성이 이제 전면화되고, 중앙집중적일 뿐만 아니라 분산적인 복제과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복제기술은 민주화된 대중 대량복제다. 숙련 노동과 전문 장비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대량복제할 수 있는 것이다.

195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확산되기 시작한 복사기, 그 뒤를 이으며 나타난 자기 테잎, 씨디, 개인용 컴퓨터, 디스켓, 디비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복사기인 인터넷이 대중 복제기술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복제기술들과 함께 불법복제시대가 열린다. 즉, 이전까지 암흑상자였던 전문적인 복제는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이 그 행위를 유발하는 해킹의 대상이 되고, 해킹을 통해 복제기술은 민주화된다. 그래서 정보·지식의 불법복제 해적질은 전문적인 복제기술을 갖추지 않고도 원하면, 필요하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고, 이제 복제는 불법이 된다.

저작권: 이용 통제에서 창작 통제로

15세기 이래 대중 복제기술 발전의 궤적을 뒤쫓은 저작권은 1960년대부터 문화예술의 향유 그리고 창조(성)의 영역에서 점차 핵심적인 위치로 부상한다. 복제에 대한 배타적 독점 권리로서 저작권(copy + right)은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사업가들이 불법복제와 맞서는 유력한 전쟁 무기가 된다. 그 양상은 보통 창작물의 유통과 배급 과정에 침입하는 전문 복제업자들과의 ‘전투’였는데,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저작권 사안은 창작물의 유통과 배급을 놓고 벌어지는 사업가들과 대중 간의 ‘전쟁’으로 확산된다. 멀게는 1980년대 초반, 가깝게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백이나 수천에 불과한 전문 복제업자가 아니라 거의 모든 컴퓨터와 인터넷 이용자 – 수십 억의 사람들이 또래 사이(p2p) 파일공유의 해킹기술로 죄다 불법복제 해적질을 하고 있으니 정보·지식 영역의 세계대전이 따로없다.

유통·배급 과정의 대량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정보·지식의 이용에 대한 통제로서 저작권체제의 강화는 더 나아가 낡은 창작 방식과 새로운 그것 간의 격렬한 ‘내전’으로 확대된다. 창작물의 소비와 공유의 이용(자)에 대한 통제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기존의 창작물을 참조하고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창작(자)에 대한 통제의 문제로까지 번진 것이다. 물론, 전문 교육과 그럴듯한 조건의 혜택을 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도 손쉽게 베끼고 만들어 전파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이 있기 훨씬 전에도 이용에 대한 통제와 창작에 대한 통제는 같은 문제다. 창작물의 가장 적극적인 이용자는 곧이어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의 문화정치

기계복제, 전기복제에서 디지털복제로 진화한 복제기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리고 사람을 가리지 않으며 이용된다. 그러다보니 주로 소프트웨어, 음악, 영화 산업으로 구성된 ‘저작권산업’의 거대한 ‘지적 재산’ 소유자들은 ‘불법복제’ 혹은 ‘해적질’을 “저작권 보호를 받는 재료에 대한 모든 비허가 복제, 배포, 이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모든 복제는 불법이다. 그리고 디지털 복제기술이, 수없이 많고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보·지식의 이용 방식들과 함께, 허가받지 않은 복제도 가능하게 한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이용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길목(공항, 항구)에서 불법복제물과 함께 “전자 기기에는 테러·마약밀매·아동 포르노 등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담겨 있을 가능성” 만으로 내 디지털 음악 재생기나 노트북 따위를 불시에 열어보여야 하는 일을 당할 수 있다(“노트북 속 정보도 공개” 미 공항 과잉수색 논란, 한겨레, 2008.2.13). 그러다 종종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Hollywood-Funded Study Concludes Piracy Fosters Terrorism, wired.com, 2009.3.3).

저런 일들은 다소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친다면, 일상의 대중문화에서 저작권의 전횡은 검열이 따로 없게 한다. 정치적 검열은 경제적 검열을 동반한지 오래고 저작권은 어느새 ‘통제사회’의 중앙탑에 자리잡고 있다. 단적으로, 그 제목도 절묘한 ‘미쳤어’라는 대중가요를 어린 아이가 따라 부르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가 인터넷에서 강제로 사라져야 한다. 이미 구글닷컴의 텔레비전(‘구글TV’)인 ‘당신의수상기닷컴’(youtube.com)에서 저작권 침해 가능성만으로 그 소유자들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아 즉시 삭제된 비디오들이 메사추세츠공대 자유문화 연구 프로젝트 웹사이트인 ‘당신의무덤’(youtomb.mit.edu)에 수북이 묻혀있다. 하지만 2005년 전후에 ‘당신의수상기닷컴’(youtube.com)이 수많은 경쟁 웹사이트들 중에서 단연 두드러지면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하게 된 것은 저작권법 위반 비디오가 자유롭게 집결할 수 있도록 허용한 탓이다.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희소성과는 거리가 먼 정보·지식 생산을 위한 복제기술에조차 우리가 저작권법을 적용하는 것은 곧, 복제할수록 넘쳐나는 정보를 인위적으로 희소한 것처럼 만들면서 문화 생산, 유통, 소비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복제기술의 결을 거스르고 풀뿌리 문화를 통제하는 저작권체제는검열의 기능을 내재하는 제도적 장치다. 디지털 복제기술이 보편화된 오늘날 저작권은 더더욱 표현의 자유도를 줄였다 늘였다 조절하는 정치경제적 검열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저작권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함께 이용자들의 자유를 제약하고 통제하는 것에 맞서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카피레프트’로 잘 알려진 자유소프트웨어(Free Software) 운동이 전개되어왔다. 만약 이 나라의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사에 윈도 운영체계와 사무용(office) 프로그램의 이용허락(license)을 받는 댓가로 매년 엄청난 돈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정보가 몰래 숨겨진 뒷문(back-door)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자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적어도 공공기관에서는 필히 사용하도록 정책을 세운다고 해보자. 거의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브라질이나 인도나 인도네시아처럼 국제지적재산연합(IIPA)이 2010년 2월 18일 미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2010 Special 301 Report)에서 외쳐대듯이 ‘악의 축’으로 내몰릴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약화시키고 지적재산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만 먹는 게 아니고 미국 종합무역법의 스페셜 301조에 따른 무역보복 감시대상에 ‘등업’하게 된다. M$의 윈도와 같은 사유 소프트웨어의 대안을 모색하거나 대체재를 찾아 이용하는 일조차 통제하려는 이와 같은 일은 올해(2010년) 처음 벌어진 일이지만, 미국이 불법복제 해적질을 무역 협상과 연결시켜 압박하고 보복하는 것은 한국을 그 첫 시범타로 해서 1986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 때부터 음반협회, 영화협회, 소프트웨어산업협회 등에서 조사 연구해 제출하는 각국의 불법복제 해적질에 의한 어마어마한 손실액은 미국이 이들 나라에 곧바로 무역 보복을 가할지 아니면 일단 감시한다고 위협만 할지를 결정되는 기준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빠짐없이 발표하며 전세계를 위협했던 불법복제 손실액은 사기다. 미국 정부(정부책임처[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에서조차 그 손실액을 믿을 수 없다고 연구보고 한다(“미 정부, 해적질(불법복제)에 대한 연구가 엉터리임을 인정,” 다섯병 안의 들레꽃, 2010.4.17). 미국에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국내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불법복제 손실액은 애초에 불법복제 해적질이 정확하게 얼마의 손해를 끼쳤는가가 중요해서라기보다 정보·지식·문화 상품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한 핑계거리인 셈이다.

불법복제를 통한 이윤창출

지구적 사기를 통해 어떻게든 독점적 이윤창출의 지위를 지켜내려는 안간힘이 처절할수록 뉴미디어 신규 자본까지 저작권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띤다. 시장을 지배하는 독점자본이 (아직) 아닌 어떤 신규 사업가들에게, 복제할 때마다 허가를 맡거나 수수료를 내야하는 저작권 보호가 생산(창작)의 비용을 상승시키고 새로운 사상과 상상의 확산 속도를 늦추고, 꼭 상관할 바는 아니더라도 저작권의 법적 보호와 집행을 위한 전체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즉 자본의 보다 빠르고 유연한 순환을 위해서 경직된 저작권의 규제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가만보면, 저작권 같은 것 없이 산업이 형성·발전하는 경우들이 더 많다. 문화산업(창조산업)의 한 종목인 패션산업은 아예 저작권이나 특허의 보호가 없고, 해적질은 이 산업이 발전하고 혁신하는 방식 그 자체다. 미국의 얘기지만 문화산업 각 분야별 매출액을 비교해봐도 영화나 음반 보다 패션 디자인의 수익 규모가 월등히 높다(“Johanna Blakley: Lessons from fashion’s free culture,” TED.com, 2010.4: 11:10 ~ 12:40).

뿐만 아니라, 불법복제 해적질은 시장 독점과 확대의 전략이기도 하다. 이전비용이나 검색비용이 큰 산업들의 경우, 잠금효과 때문에 불법복제 해적질로부터 더 큰 이득을 얻게 된다. 예전에 M$의 최고경영자가 중국에 갔을 때,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할 때 이왕이면 M$ 것으로 해달라고 말한 이유도 그것이겠다. 그리고 개별자본에는 손실이지만, 총자본에는 이득인 경우가 많다. 하나의 사업 영역 – 영화 – 에서는 손실이지만, 연관 산업이나 보조적 사업(캐릭터)에서, 혹은 전혀 다른 산업(초고속 인터넷 장비 업체)은 수익의 증가가 이루어진다(“What’s the effect of piracy to the economy? Nobody knows!,” TechnoLlama, 2010.4.16.). 또, 해적질은 그 사업가들에게 공짜 마케팅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참여하는 불법복제 해적질이 대부분 지배적 주류 상업 문화 콘텐츠에 대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상업적 성공을 위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발적 마케팅 도우미가 되고 있는 셈이다.

공짜의 비용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지불하는 공짜의 비용은 막대하다. 불법복제는 문화산업 일반의 ‘근본독점’(radical monopoly)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복제 영화, 음악, 게임, 소프트웨어의 공짜 유통과 소비는 저작권 법제의 강화를 통한 자본의 독점, 검열, 통제에 맞서는 저항운동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반면, 문화산업(오락산업, 소프트웨어산업) 전체에는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근본독점’은 곧 예술다양성, 문화다양성을 죽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불법복제 해적질로 얻는 공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불법복제는 지배적 주류문화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않으며, 자유 소프트웨어와 같은 대안적 생산 방식과 그 창착물을 더욱 주변화시킨다. 예술의 고향은 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인만큼 예의 예술은 대중의 불법복제 해적질의 혜택(?)을 받기보다 그에서조차 소외되기 일쑤다. 아예 없지는 않더라도 또래사이(p2p)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독립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다 가뭄에 콩 나듯 ‘대박’난 <워낭소리>가 영광스럽게도(!) 상업적 파일공유 사이트에 뜬 것이 반갑다 했더니, 초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귀한 손님들을 “디지털 악마”라 부르며 내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좋게 보아, 공짜가 대안과 독립의 예술을 위협한다는 취지의 액막이를 위한 몸부림이었으리라.

창작의 제 1원리, 불법복제의 정치화

불법복제 해적질이 근본독점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디지털 파일공유, 아니 불법복제를 저지르는 우리, 그리고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중요하다. 대중 불법복제는 점점 정보·지식 자본의 축적 전술로 기능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보자본주의 혹은 지식기반 경제에서 그 상품화를 교란하고 위협하기도 한다. 복제는 이제 생산의 문제다. 사실 복제가 불법이 되는 것도 복제 자체가 생산이기 때문이다. 생산이 사회화되고 생산의 정치가 부상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화하는 것이다.

불법복제 해적질은 원래부터 창작의 제1 원리다. 물론 처음부터 ‘불법복제’나 ‘해적질’로 불리지 않지만 그 법적 잣대를 상관하지 않으면 창작 방법은 똑같다. 동화, 민요, 설화, 농담과 같은 구전의 집단창작이 그렇고, 음뽑기(sampling)나 되섞기(remix)가 또한 모방, 복제, 표절이다. 문화산업의 창작 방식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망타진(One Source Multi Use)이나 다시부르기(remake)가 또한 모방, 복제, 표절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상(思想)과 상상(想像) 모두에 들어가 있는 상(想)은 생각하다, 닮다, 비슷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모든 예술 창작은 불법복제 해적질의 과정이고, 모든 예술작품은 불법복제물이다. 어느 편에 서있느냐에 따라 불후의 명작이 되거나 짝퉁으로 고소당할 뿐이다.

불법복제가 원래부터 창작의 제1원리였던데 더해 오늘날, 적어도 비판적 예술 – 아직 변방에 살고 있는 예술에 있어 창작의 제 1원리는 더더욱 불법복제 해적질이다. 불법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곧 불법예술이다. 오늘날 예술 창작 조건의 초기설정이 그렇다. 정치가 심미화되는 것과 함께 예술과 미학이 불법화되는 현재 상황에 맞서 우리는 벤야민을 따라 그를 뒤집어 미학의 정치화를 꾀하게 된다. 미학의 불법화라는 현재의 예술 창작의 조건을 아예 예술 행동주의의 전술로 삼은 ‘불법예술’(illegal art)처럼 말이다(이광석, [사이방가르드], 안그라픽스, 2010 참조). 그리고, 미학의 정치화는 오늘날 복제의 정치화를 의미한다. 복제의 정치화에는 두 가지 출발점이 있다. 하나는 역사상 (합법)복제와 불법복제를 갈랐던 저작권(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복제를 불법복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술의 위기와 저작권 철폐

예술정치연구자인 요스트 스미르스(Joost Smiers)의 [예술의 위기](커뮤니케이션북스, 2009)를 보면, 오늘날 예술의 위기는 문화·예술 표현의 다양성이 축소되는 경향을 가리키는데 저작권(법)은 그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저작권법의 강화(보호기간의 연장 등)의 근거로 제시되는 예술가에 대한 보상과 창작의 유인(incentive)과는 반대로 저작권 제도가 예술가들이 먹고 사는데 그리고 다음 창작을 준비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러 연구들이 인용되어 있다. 예술가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그들과 외주제작 계약하는 문화복합기업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미르스는 저작권법 자체와 문화복합기업의 독점 지배를 모두 철폐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장의 제목은 “저작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인데, (예술가들의) 저작의 권리를 보호해줄 것만 같은 것은 지금의 저작권법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이 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저작권법이 강화될 것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체제 내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일단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사회 혁신과 발전을 위해 저작권과 특허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특허 및 저작권 법 폐지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Economists Say Copyright and Patent Laws Are Killing Innovation; Hurting Economy],” foog, 2009.3.12.). 익히 알려진 창작공유 이용허락(creative commons license)의 첫 최고경영자였던 로렌스 레식 역시 시장 자유주의자였으니 놀랄 일도 없다. 그러고 보면 저작권 철폐가 과격하게 들리지만, 과도하게 강화되고 과잉 보호된 것을 본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일뿐 사실 그 자체로는 뭔가 더 나아지거나 할 것도 없다.

모든 복제는 불법복제다.

복제의 정치화를 위한 또 하나의 (동시적) 출발점으로, 이미 현실의 지배논리가 억지를 부리는 바 그대로, 순순히, 모든 복제를 불법복제로 받아들인다. 우리 모두는 불법복제를 일삼는 범죄자이고 우리 모두는 테러리스트다. 불법이 아닌 복제가 있음을 설득하고 저작권법 상의 예외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저작권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복제, 미학, 예술, 문화를 정치적으로 무력하게 한다. 반대로 모든 복제를 불법복제로 인식하고 자인하고 그리고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질문은 ‘불법복제’를 어떻게 뿌리뽑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적 재산? – 정보와 지식이 왜 재산이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 공동의 창조성과 문화·예술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상품이 되어야하는가로 되던져진다. 그리고 문화예술 영역에서 생산의 정치가 부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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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권오름 제 208호, 2010-06-23 (http://hr-oreum.net/article.php?id=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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