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커티스(Adam Curtis)의 새 다큐멘터리 <기계의 은총으로 보살펴지는 모든 것들>(All Watched Over by Machines of Loving Grace)가 나왔다.

위 한글 제목은 검색하여 발견한 곳에서 가져온 것인데, 리처드 브로우티건(Richard Brautigan)이라는 미국 작가가 1967년에 발표한 시 제목이라고 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시에서 작가는 기계의 도움으로 본연의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한다.

아래는 예고편:

영국의 BBC 채널 2에서 5월 23일부터 방영한다고 하는데, 인터넷으로는 (당장) 볼 수가 없다. 다른 작품들처럼 곧 공유되겠지만…

아담 커티스(Adam Curtis)는 크리스 마르께(Chris Marker)에 비견되는 연출자인데, 그 작품들은 아마도 국내에 소개가 안 된 듯 하다. 기회가 닿는대로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관련 글:

출처: 인권오름  248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1년 4월 27일 (http://hr-oreum.net/article.php?id=1768)

신상털기, 소셜 감시, 프라이버시의 위기

금융 기업들에서 연속으로 터진 해킹 사건,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추적하고 감시해온 스마트폰, 몇몇 연예인에 대한 영리적 신상털기 행태. 최근의 주요뉴스를 장식한 일들이다. 서로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종종 발생해온 이런 사건들은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정보을 공개하고 공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달라진 정보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사건을 악의적 해커(혹은 북한)의 소행으로 보거나 고도화된 이용자 위치정보 수집의 불법성을 따지거나 일부 막나가는 네티즌의 일탈을 비난하는 식의 사법적 관점으로만 접근할 때 온전히 해결되지 않고 때되면 터져나오는 반복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여러 각도에서 오늘날 프라이버시가 처한 위기를 부각시키는 개별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라지고 있는 듯한 오늘의 정보문화 현실을 심도깊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

방문한 인터넷 웹사이트 접속 기록, 주고 받은 이메일, 여기저기 남긴 댓글, 메신저 대화, 트윗이나 담벼락 게시물 , 언제 어디서 올리거나 내려받은 사진이나 음악이나 비디오 등 모든 정보를 국가기관이나 기업이 언제든지 손쉽게 수집하고 분석하여 감시·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널리 퍼져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감시 기술은 우리가 맘만 먹으면 개인적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손쉬운 것이 되었다. 시민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기업을 창업할 수 있고, 누구나 수퍼스타가 될 수 있게 된 것처럼 또한 누구나 ‘큰형님’(빅브라더)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시 기술의 민주화 덕분이다. 이는 구글 검색만으로도 가능한 신상털기가 두드러진 현상으로 주목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널리 퍼져있는 소셜 미디어(감시) 문화가 전제되어 있다.

신상털기: 또 하나의 시민 참여 미디어

신상털기는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이나 느닷없이 사회면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된 평범한 개인을 목표대상으로 해서 종종 발생해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에서 특기할 만 것은 그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양상이 온라인 상업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 , 사이버 좀비, 인격살인, 사이버 괴롭힘,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로 비난 받는 일임에도 일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화한 신상털기를 인터넷의 네티즌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처럼 이야기하지만, 신상털기는 그 말이 있기 전부터 광고 수익에 의존해온 언론 미디어의 주특기였다. 초국적 미디어 제국을 거느린 루퍼드 머독 소유의 영국 일요 신문인 ‘뉴스 오브 더 월드’나 자매지 ‘더 선’ 등이 영국 왕실의 휴대폰을 해킹해 불법 감청하며 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기사를 작성해왔다. 불법 해킹까지 일삼은 언론 보도는 다소 극단적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사건사고가 적시에 알아서 그럴듯하게 터져주지 않기 때문에 언론 미디어는 연예인을 비롯해 주목을 끄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캐내어 적절히 폭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아 구독률이나 시청률을 올리고 곧 광고 수익도 높여왔다.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일부 네티즌이 그런 언론 미디어의 관행을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 미디어에 호의적이던 언론 미디어가 이런 종류의 시민 미디어에 대해서는 냉담한 듯 하다. 두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자는 “두 사이트 모두 상업 광고가 붙어 있어 두 사람의 사생활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부르고 있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비난하고 있는 언론사 웹사이트 자체가 그와 다름없는 온갖 고민해결류의 상업광고를 위아래 양옆에 배치한 채로 무분별한 사생활 들추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거듭 들추면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사실, 신상털기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때 그에 광고를 붙여 돈벌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놀랄 것도 없이 인터넷에서 오래전부터 그렇게 자리잡아온 언론 미디어의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이다.

페이스북에서의 셀프-신상털기

그런데 시민 미디어를 자처해온 오마이뉴스는 (역설적이게도) 최근의 신상털기 사태에 대해 심지어 “네티즌이 미쳤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제목을 달았는데, 그러면 일부 미친 네티즌을 인터넷에서 걸러내는 것으로 해결하자는 얘기일까. 광고로 돈벌이를 해야하는 언론 미디어의 뉴스상품 생산양식이 이미 그러하다는 것을 잠시 눈감아주더라도 신상털기가 뭔가 이상한 사람들만의 인터넷 비행이나 일탈로 보고 끝낼 사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부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여하고 있는 문화가 사태의 이면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의 유행은 곧 소셜 (미디어에 기반을 둔 사회적) 감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있다. 싸이월드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고 그에 상호작용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나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넓혀나가는데 최적화된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정보자본주의 문화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지고, 사적 정보의 공유 서비스가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개인정보는 더 드러내야 좋은 일이 되고 있다.

신상털기가 어느 한 두 명의 사적인 정보를 무차별적인 대중이 집단을 이뤄 폭력적으로 공개하는 사건이라면, 페이스북은 자기 스스로 신상을 드러내어 연계를 맺는 기제로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신상 공유문화이다. 서로 달라보이지만, 특정한 사건사고가 터져나오는 때 곧바로 신상털기가 뒤따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신상 공유문화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통한 위치추적과 감시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아니한 것을 넘어)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에 못지 않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끊임없이 노출(유출)될 수 있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의 이용은 마치 합법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양자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감시라는 데는 변함없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소셜 미디어(감시)는 지금까지 감시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자발적이고 합법적인 그것으로 바꾼다는데 가장 큰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정보 감시의 폭력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로부터는 정부·기업의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으로 그리고 아래로부터는 신상털기와 같은 형태로 그 폭력성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의 위기

페이스북의 창업자는 “이제 사람들은 보다 많은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 편안함을 느끼며, 개인적인 프라이버시 문제는 더 이상 사회적인 규범이 아니”라며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구글의 사장도 “인공지능으로 당신이 올린 글과 위치정보를 분석해 우리는 당신이 다음에 어디에 갈 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전세계 45개 소셜네트워크사이트 중 60%가 개인 신상정보의 공개를 기본으로 설정해놓았고 그 이용자의 80~99%가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면, “프라이버시 시대의 종말”은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프라이버시 위기는 사적 정보가 흐르는 사적 영역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다다. 우리의 사적 정보가 노출되고 유출되어 가는 곳이 다름 아닌 공적 영역이고, 그렇게 사적 정보가 공적 영역을 뒤덮어 사회정치적 사안들을 유야무야 묻어버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 철학자가 지적하듯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공적 영역과 그것이 수반했던 위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공적 영역이 그 위엄을 계속 지킬 만한 것이었느냐는 별도의 문제로 한다면, 기존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될만큼 상황이 변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느 것이 “사적인 문제”이고 어떤 것이 “공적인 관심을 쏟을 사안”인지를 누구가 구별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프라이버시 침해 사건들이 많아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기왕의 (시민에 대한) 정치적 감시와 (노동자와 소비자에 대한) 경제적 감시에 더해 시민 참여적 사회적 감시로서 소셜 미디어(감시)까지 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은 프라이버시가 처한 심화된 위기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 각자의 신상, 상태, 위치, 행태 정보가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나 모바일 기기를 매개로 상품으로 거래되고 교환되면서 프라이버시는 이제 근대국가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인권의 의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프라이버시의 위기를 온전히 넘어서는 작업은 정치적 감시나 경제적 감시 뿐만 아니라 자발적 소셜 감시를 통한 정보 상품 교환 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이를 우리가 얼마나 달리 구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참고한 것

관련 글:

출처:  “아랍 혁명에서 인터넷 전쟁,” 진보넷 – 정보운동 ActOn 12호, 2011.봄.

아랍 혁명에서 인터넷 전쟁

0. 인터넷 ‘셧다운,’ 혹은 국가의 인터넷 서비스 거부 공격

이집트에서 2011년 1월 28일부터 2월 2일까지 인터넷이 전면 차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실 이집트 정부는 인터넷이 반정부 투쟁이 조직되는 주요한 현장이 되기 시작한 2005년 이전부터 이미 인터넷을 통제해왔고, 페이스북에서 반체제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소셜 미디어에 대한 감시와 검열을 지속해왔다.1 하지만 1월 25일 “분노의 날”(Jan25) 시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혁명적 봉기로 발전되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들고일어나자 감당을 못하고 인터넷의 작동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이다. 국가권력이 감행한 대대적인 인터넷 서비스 거부 공격(DOS)이라고 할 만하다.

“분노의 날”(Jan25) 시위가 있던 1월 25일부터 이미 트위터에 대한 차단이 있었다. 정부는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지만, 트위터 공식 트위터에는 교통량(트래픽)이 현저히 감소됐다는 보고가 올라왔다.2 그에 이어 26일에는 구글과 페이스북 접속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28일 “분노의 금요일”의 전날 밤에 급기야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전면 서비스 거부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시간으로 27일 밤 10시 반을 넘으면서 인터넷 교통(트래픽)의 93%가 차단된 것이다.3

출처: renesys.com

출처: renesys.com

인터넷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를 위한 이동통신망 역시 차단되었다. 영국 기업으로 이집트 정부가 36%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보다폰 이집트(Vodafone Egypt)는 이집트의 모든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지역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도록 요구받았고 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 텔레콤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모비니(Mobinil) 역시 마찬가지였다.4 그에 더해 1월 31일 아랍 전역에서 알자지라 방송 신호에 대한 최악의 전파 방해가 있었고,5 이후로도 계속 전파 방해가 있다는 공지가 알자지라의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다.

이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인터넷 전면 폐쇄 사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2월 네팔은 왕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나라 전체에 국제적 인터넷 연결을 절단시킨 적이 있었고, 2007년 9월 29일 버마의 독재정권은 사프론 혁명(Saffron Revolution) 동안 정부가 시위대에 가한 폭력적 탄압을 시민들이 기록해 올린 사진과 비디오의 흐름을 막기 위해 인터넷 연결을 전체적으로 폐쇄시킨 바 있다.6 또 이란의 경우, 1천만 개의 웹사이트가 정치·사회적으로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접근 금지되어왔는데 2009년 반정부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을 때 정부는 시위대 관련 웹사이트와 해외 언론 웹사이트를 차단시키며 온라인 감시를 강화했고, 데이터 전송율을 80%까지 떨어뜨리면서 거의 폐쇄와 다름없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인터넷만이 아니라 이동통신망의 경우도 이란과 중국에서 부분적으로 텔레콤을 폐쇄한 적이 있었다.7

‘막으면 돌아가고’: 풀뿌리 네트워크 기술

인터넷 전면 폐쇄는 핵 공격의 위기 상황에서도 취하지 않을 극단적인 조치지만, 체제가 무너지게 생긴 권력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외 여론을 잠재우면서 반정부 시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감행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그 반대였다. 시위는 계속되고 도리어 더욱 확산되었다.8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온 사람들조차 이제 거리로 나가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9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없던 시절부터 사회운동의 조직화와 대중동원에 필수적인 전통적인 풀뿌리 미디어의 활용이 더욱 두드러졌다. 시위대가 점유한 광장,10 거리의 낙서, 손팻말, 전단지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전단지는 그렇지 않아도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터넷 접근이 차단돼온 카이로의 저소득 계층 지역에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를 알리는데 가장 적절한 매체로 기능했다.11 시위 전술을 담은 유인물은 정보기관의 감시에 취약한 소셜 미디어보다는 이메일이나 복사와 직접 전달을 통해서 (재)배포되었다.12

점차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면서 그에 대항하는 시도가 여러가지로 나타났다. 우선, “분노의 날” 시위가 있었던 1월 25일부터 트위터가 차단되고 이어 페이스북과 구글 등이 차단될 때 이집트 내의 사람들이 이를 우회하여 접근할 수 있도록 지구적으로 분산된 프록시 서버(Global Proxy Cloud), 무료/자유 가상 사설망 서버(FREE VPN Server), 토르(Tor)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익명의 인터넷 연결 기술인 토르(Tor)의 이용자가 급증했다.13 또,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선 인터넷 연결이 차단되었을 때, 광장 인근에 살거나 사무실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선 인터넷 공유기(wifi routers)의 비밀번호를 제거해 광장의 시위대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했다.14 그리고 휴대전화기를 모뎀으로 활용해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했다.15

출처: the Tor blog

보다 안전하게 모바일 기기를 활용하려는 장치도 마련되었다. 시위 참가자가 감청과 위치추적을 당하지 않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폰의 앱(안드로이드 기반)이 개발되어 보급되었다. 암호화와 사설 프록시 서버를 이용해 모바일 통신의 보안을 제공하는 ‘붉은전화’(RedPhone)와 ‘문자보안’(TextSecure)이 그것이다.16 더 나아가 이용자가 감시당하는 위험 없이 안전하게 트위터를 활용할 수 있는 대안적 트위터를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그 이름이 또한 ‘타흐리르’(Tahrir, 해방)다.

인터넷이 전면 폐쇄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자 인터넷(하부구조)을 대체할 수 있는 풀뿌리 기술이 총동원되었다.17 인터넷과 이동통신이 폐쇄되었지만 유선전화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텔레코믹스(Telecomix and We Rebuild) 등의 기술 활동가들은 먼지 쌓인 전화연결 모뎀을 다시 꺼내 1980~90년대 그랬듯이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18 웹 이전의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인 사설 전자게시판(BBS) 역시 재활용되었다. 또, 팩스가 끊어진 채널을 대체하는데 이용되었다. 텔레코믹스는 인터넷과 연결되는 팩스(Telefax), 즉 ‘팩스-웹 연결’(fax-to-web bridge)를 제공했는데, 이집트로부터 팩스를 받아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신자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고 그 내용을 웹사이트에 올리거나 발신자의 요청에 따라 원하는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기능을 가졌다.19 이와 다르게 해킹행동주의 네트워크인 ‘무명씨’(Anonymous)는 정부의 부패상과 인권 침해의 심각한 현실을 알리고 퍼뜨리기 위해 위키유출에서 공개된 미국 외교전신(cables) 중에서 무바락 정권과 관련된 문서를 반복해서 팩스 전송했다.20 이것들 보다 더 오래된 기술도 활용되었는데, 아마추어 무선통신 혹은 햄 라디오(ham radio)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햄 이용자는 면허증을 얻는데 정치적 인맥이 필요한 이집트 상황에서 시위에 반대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21 사실, 전화연결 모뎀이나 팩스, 햄 라디오의 활용이 성공적으로 인터넷 연결을 대신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지배적인 네트워크 기술에 대한 풀뿌리 대안의 가능성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지 잘 보여준 것이다.

네트워크 연결 중에서도 현장의 속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기 위한 대안적인 트위터 방식에 호응이 컸다. 먼저 미국의 한 대학원생은 이집트에서 소셜 미디어가 차단되자 그의 이집트 친구들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최신 정보를 계속 트위터 계정 ‘@Jan25voices’에 올리고, 휴대전화가 끊기자 유선전화로 지속했다. 그의 트윗은 “현지 전화( Live Phonecall)에 따르면: …”하는 식으로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전문 기자들도 현장에서 보도하기 힘들었을 때 그는 실시간 현지 정보를 제공했다.22 흥미롭고 문제적인 또 하나의 실험은 구글이 나선 일이었다. 구글은 이전같으면 해킹 활동가나 기술운동집단이 했을 사회적 대안 기술 개발에 직접 뛰어들었다. 마침 지난 1월 25일 구글은 전화에 소셜 미디어를 연결하는 서비스인 ‘지금말하세요’(SayNow)를 인수했는데, 이집트에서 인터넷이 폐쇄되자 전화로 트윗을 하는데 이를 활용했다. ‘말로트윗하기’(speak2tweet)가 그것인데, 이집트에서 전화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보내면 ‘지금말하세요’ 사이트에 문자 메시지로 올라가고, 그 메시지에 대한 링크가 자동으로 트위터 피드(@speak2tweet)로 트윗된다. 그 음성이나 문자 메시지에 대한 번역은 군중외주의(crowdsourced) 번역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자원한 사람들이 구글 문서의 번역 페이지에 들어가 번역한 후에 ‘이집트 얼라이브’(Alive in Egypt)에 올리는 식이었다.23 이는 인터넷 연결이 없이도 트윗 – 즉, 실시간 단문 속보의 전달과 공유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인터넷이 복귀되기 시작한 2월 2일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널리 이용되었다.

또, 위성방송과 트위터가 결합된 형태도 있었다. 카이로의 한 미디어 연구자가 언급하고 있는 알자지라의 위성뉴스를 통한 트윗 방송(Satellite News Broadcast of Tweets)이다.24 이는 트위터를 통해 이집트 시위 현장의 정보가 외부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외부에서 현장으로 정보가 되먹임(feedback)되어야 하는데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외부의 정보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알자지라는 이렇게 현장의 활동가와 시민에게 시위 전술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더해 구글의 ‘말로트윗하기’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긴급 전화 번호를 계속 공지해주었다. 이렇게 전화와 트윗, 위성과 트윗이 결합되는 것과 다르게, 위성-라디오-입소문의 결합도 있었다. 아라비아 위성뉴스는 그 방송 내용을 라디오로도 내보내면서 그 도달 범위를 확장했는데, 그 연구자의 조사에 따르면, 라디오를 통해 위성뉴스가 방송되면서 차에서 이를 듵은 운전자들이 차가 막힐 때 새로운 정보를 보행자들과 공유하고 그들은 다시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인맥)을 통해 정보를 퍼뜨렸다. 이와 같이 인터넷이 차단되자 그 전까지 서로 연계되지 않았던 네트워크 간의 행동가능한(actionable) 정보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25

풀뿌리 기술 저항의 역동(패턴)

인터넷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진 이집트의 사례는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공동체 미디어가 어떻게 기존의 미디어 및 정보기술을 재결합시키면서 그에 대항하고 대안을 구성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보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핵심 요소가 된다. 반정부 시위대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시위대 내부(해방광장 혹은 이집트 전역)에서 활발하게 오가는 정보가 있고, 대항해야할 정부가 생산하고 퍼뜨리는 반-정보가 있고, 외부의 국제연대 세력을 포함해 국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정보가 또한 들락날락 해야한다. 즉, 내부에서 소통되는 정보와 반-정보가 있고, 내외부에 걸친 정보로서 내부로 들어가야하는 것과 외부로 나가야 하는 정보가 있다. 그리고 정보는 신속하게 실시간으로 전달돼서 당장의 시위 전술을 구상하고 행동에 옮기기 위한 것이 있고,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전지구적인 범위까지 맞물려 돌아가는 사건의 연쇄와 흐름을 분석하고 판단하여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가 있다. 행동을 위한 정보는 최대한 실시간에 가깝게 유통될 필요가 있고, 숙고를 위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지연되는 느린 속도를 갖지만 입체적인 관점을 담아야 한다. 이런 속보와 분석의 정보 모두가 잘 유통되기 위해서 내외부의 정보 유통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볼 때, 인터넷은 시위대 내부에서(혹은 활동가와 시민 대중 간)의 쌍방향 소통을 위해서도 중요한 매개였지만 이집트의 억압적 체제를 고려하면, 특히 정부의 인터넷 폐쇄가 국제여론과 국제연대로부터 반정부 시위대를 고립시키기 위한 조치였음을 상기해 볼 때 내외부의 소통에 더욱 결정적인 채널이었다. 그래서 앞서 보았듯이 인터넷이 끊겼을 때 인터넷과 같은 내외부의 소통을 지속하기 위해 등장한 것들이 유독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위성-트윗 같은 경우는 외부에서 내부로 실시간으로 들어가는 정보를 위한 채널의 복원이었고, 인터넷 대신 전화를 이용한 ‘말로트윗하기’ 역시 실시간으로 신속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위성-트윗과 반대로 이것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연결 모뎀이나 팩스 역시 국제적인 정보의 유통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인터넷의 폐쇄에 맞선 시위대의 정보 미디어 행동주의는 내부에서, 그리고 특히 내외부 간의 정보 흐름을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한 작업으로 종합될 수 있다. 반정부 시위의 역동적인 전개는 내부와 내외부모두에서 정보의 상호작용의 흐름이 얼마나 활발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보 미디어 행동주의는 상당히 결정적인 운동의 양상이 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전통적 풀뿌리 미디어를 비롯해 전화, 팩스, 무선통신, 라디오, 위성TV 등이 총동원되었고, 그 활용 방식도 평상시라면 잘 보기 힘든 것이었는데, 낡은 기술과 최신 기술이 결합되었고 기존의 방송 미디어(위성TV, 라디오 등)와 네트워크 기반의 소셜 미디어(트위터 등)이 결합되었다. 단적인 예로, 트위터는 실시간의 속보성 정보가 내부에서 그리고 내외부를 연결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졌고, 인터넷이 차단되자 무엇보다도 이 소통 형식을 지속시키기 위해 (국제)전화, 위성TV, 라디오 등이 그 형식과 결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두드러져보인다고 이를 두고 지배 언론은 ‘트위터 혁명’으로 명명했지만,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요동치는 전체 정보 미디어 환경의 재구성 속에서 벌어진 한 양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동이 정부의 인터넷 폐쇄에 맞서는 정보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위대는 정부가 생산하고 퍼뜨리는 정보에 대항할 필요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 오히려 (반-)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공세적 접근도 있었다. 인터넷 폐쇄 조치 자체가 그렇지만 정보경찰이 계정을 탈취한다거나 하는 해킹 공격이나 전파 방해가 시위대의 정보 흐름을 끊는 시도였고 이에 맞서 이루어진 무명씨의 정부 웹사이트나 이동통신 기업들에 대한 해킹 공격에서 볼 수 있듯이, 시위대 또한 정보의 흐름을 위한 대안적 채널을 새롭게 구성해낸 것뿐만 아니라 특정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전술을 함께 사용하였다.

다른 인터넷은 가능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우선, 소셜 미디어를 다시 받아들이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문화에 파고 들어온 소셜 미디어는 꼭 현재와 같이 기업이 지배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구글일 필요가 없고, 심지어 인터넷일 필요도 없다. 이 새삼스러운 사실은 이번 격변 속에서 인터넷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전개되자 그 소셜 미디어가 기반을 두고 있던 공동체의 유기적인 사회(관계) 구조가 표면에 부상하며 가시화되었다.26 한 연구자는 이번 경험이 사람들이 연결성에 대해 갖는 자신의 권리(entitlement)를 지각하는 방식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했다고 하면서 소셜 미디어는 특정한 기술을 넘어서는 진정한 변화를 구성했다는 것이다.27 즉, 우리는 이번 아랍 혁명의 과정에서 페이스북 혁명이나 트위터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소셜 미디어가 사회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 어느 정도인지, 인과적인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런 사회정치적 변화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혁명적 사회변화 과정에 함께 맞물리며 어떻게 보다 진보적으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터넷의 속성 자체가 초국적 네트워크이듯이 이집트에서 인터넷이 전면 폐쇄되는 사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항한 조직적 움직임 역시 국제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일 역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국제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적인 예로, 아랍의 한 해커는 지난 6년간 지역의 활동가, 기자, 인권 변호사에게 암호화, 이메일에서의 보안(PGP), 토르 이용과 같은 풀뿌리 해킹 기술을 통해 인터넷에서 감시와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교육해왔다. 그는 또 사회운동가나 인권활동가의 보안, 프라이버시, 익명을 위한 자유소프트웨어 도구 모음 책자인 ‘보안 상자’(Security In A Box)의 아랍어 편집본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28 2009년 이란의 반정부 시위 때도 해외의 해커와 기술 활동가들이 억압적 정부가 인터넷의 접근을 제약하는 것을 우회하는데도 국제적인 지원을 시도했다.29 이집트에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는 프록시 서버를 제공한 ‘접근’(Access) 같은 국제적 기술운동 집단 역시 이란에서의 투쟁 경험을 통해 조직된 것이다. 또한 튀니지와 이집트의 활동가들은 리비아의 반체제 시위대를 지원했는데, 단적으로 벵가지 등 해방된 리비아의 동부 도시들에 인접한 이집트에서 국경을 통해 구호물자를 조달하기도 하고, 리비아에서도 인터넷이 폐쇄되자 현장에서 생산된 미디어를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대신했다.30 이와 같이, 국제연대는 인터넷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였다.

민중 봉기가 그랬듯이 정부의 인터넷 폐쇄 조치 역시 이집트와 여러 곳들로 도미노처럼 퍼져갔다. 하지만 이는 이번 아랍 혁명 시기 동안에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인터넷 탄압 사례가 아니다. 반정부 시위가 터져나오거나 정보의 사유화와 상품화를 위반하는 정보의 자유 흐름이 거센 거의 모든 곳들에서 일시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인터넷 폐쇄가 이루어지고 있다.31 그래서 애초 인터넷이 핵공격에도 안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기획되었던 것처럼 이제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국가와 이윤창출을 위해 인터넷을 사유화하고 거듭 통제하려는 기업에 맞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인터넷, 말하자면 ‘대안 인터넷’이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될 때가 되었다.

1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조동원, 인권오름  240호 나들터, 2011.3.2.

2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internet.artizans, 20112.10.

3Egypt’s Internet Blackout: Extreme Example of Just-in-time Blocking,” Masashi Crete-Nishihata & Jillian C. York, OpenNet Initiative, 2011.1.28. 이 때 누어(Noor Group) 인터넷 제공업자(ISP) 회선은 차단되지 않았는데, 그 고객 명단에 이집트 증권거래소(Egyptian Stock Exchange), 이집트 상업 국제은행, 이집트 중앙은행, 이집트 신용평가국(I-Score), 이집트 항공 등 금융 정보 네트워크의 핵심 기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31일 저녁에 차단되었다(“Egypt’s Net on Life Support,” Renesys Blog, 2011.1.31).

4The Role of Multinationals in Egypt’s Communication Shutdown,” Business Ethics, 2011.2.2.

5Egypt’s uprising: different media ensembles at different stages,” John Postill, media/anthropology, 2011.2.10.

6Egypt’s Internet Blackout: Extreme Example of Just-in-time Blocking

7Digital Media and Iran’s Green Movement: A Look Back with Cameran Ashraf,” The Hub(hub.witness.org), 2009.12.15.

8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Alix Dunn, meta-activism project, 2011.2.13.

9Egyptians Were Unplugged, and Uncowed,” NYTimes.com, 2011.2. 20.

10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해방 광장이라는 뜻)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공간적 매체였는데, 단적으로 다국적 즉석 음식점(KFC)은 시위대가 접수해 간이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아이를 가진 여성들의 시위 참여를 돕기 위해 광장 한 켠에 유치원이 마련되기도 했다. “Egypt: The camp that toppled a president,” BBC News, 2011.2.11.

11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매체는 아마도, 무바락이 사퇴하기 이틀 전까지 오락 프로를 방영하거나 반정부 시위에 대한 흑색선전을 일삼은 국영TV라고 할 수 있는데, 시위대는 반정부 시위의 정당성과 인민의 집단적 요구를 알리는 전단지를 이들 지역에도 널리 유포했고, 실제로 25일의 시위에 이들 지역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했다(“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12Egypt’s uprising: different media ensembles at different stages”; “Egyptian Activists’ Action Plan: Translated,” The Atlantic, 2011.1,27. 시위 전술 전단지의 한글 번역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이집트 시위 현장에 뿌려진 시위 전술 유인물,” The Dispossessed, 2011.2.3.

13Recent events in Egypt,” The Tor Blog, 2011.1.29. 토르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참여를 통한 지구적 연대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토르의 계주와 다리(Tor relays and bridges)를 내려받아 자기 컴퓨터에 운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터넷 검열을 피해 익명의 네트워크 접속의 가능성이 커진다.

14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15Without Internet, Egyptians find new ways to get online,” Computerworld, 2011.1.28.

16Free Android encryption comes to Egypt,” The Register, 2011.2.10.

17보다 자세한 내용은http://werebuild.eu/wiki/Egypt/Main_Page 그리고 http://www.movements.org 참조.

18Low-Tech and the revolution or: How a video of an egyptian girl forced us into technology of the 90s,” We Rebuild Interfax, 2011.2.2.

19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20Amid Digital Blackout, Anonymous Mass-Faxes WikiLeaks Cables To Egypt,” Forbes, 2011.1.28.

21Ham radio not a viable option for Egypt,” PC World Australia, 2011.2.1.

22Without Internet, Egyptians find new ways to get online”; “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23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Egypt’s uprising: different media ensembles at different stages

24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25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26The Religious Element of Egypt’s Secular Revolution,” Alix Dunn, meta-activism project, 2011.2.15.

27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28New Video: Cairo Geeks Survive Tahrir Square Assault,” Wired.com, 2011.2.2.

29Digital Media and Iran’s Green Movement: A Look Back with Cameran Ashraf

30Libya’s revolution headquarters,” Al Jazeera English, 2011.2.27.

31가장 최근의 극적인 사례는 2010년 12월에 있었던 위키유출(Wikileaks)에 대한 미 정부와 아마존, 금융 기업들의 그 웹사이트 차단과 서비스 거부였다. 이 때도 대안 인터넷을 위한 국제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수많은 위키유출(Wikileaks)들과 ‘대안 인터넷’,” 조동원, 인권오름  236호 나들터, 2011.1.26.

관련 글:

출처: 인권오름  240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1년 3월 2일 (http://hr-oreum.net/article.php?id=1697)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전역으로 번진 아랍의 사회 변혁운동이 처음에 튀니지에서 퍼져나오고 이집트로 확산되는 것처럼 보일 때, 지배 언론은 이를 “재스민 혁명” 말고도 “페이스북 혁명,” “트위터 혁명,” “위키리크스 혁명”으로 불렀다. 물론 사회운동 조직과 활동가들이 독재체제 하의 억압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해외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시위 조직화와 대중동원을 이뤄낸 것이 사실이다(jadaliyya). 하지만 “페이스북 혁명”의 이면에는 페이스북 ‘반’혁명이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이른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사회운동에 도움이 된 것 이상으로 지배 권력이 봉기와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민을 감시하는데 써먹고 있는 도구다.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정권의 감시 사업에 이용되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페이스북의 실명제

소셜 미디어의 등장,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친한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인터넷에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하는 네트워크 문화의 형성은 감시기술사 차원에서 볼 때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이들의 개인 신상과 그 인맥을 곧바로 추적할 수 있게 자발성과 자동성이 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명으로 말이다. 페이스북은 온라인 사기와 같은 사이버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이용자 보호를 기한다는 명목으로 이용자에게 실명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nytimes). 대한민국처럼 주민번호라는 편리한 통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회원가입 때부터 이를 강제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가명을 쓰고 있는 것이 발각될 때 그 서비스약관(facebook)에 따라 계정이 삭제된다. 실제 그런 일들이 있어왔고(jilliancyork), 최근 아랍의 사회운동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

아랍 전역에 걸친 혁명의 첫 포문을 연 튀니지에서 맨처음 봉기가 일어났던 도시인 시디 부지드(Sidi Bouzid)의 이름을 딴 “에스비지 뉴스”(SBZ News)라는 명칭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한 활동가는 알리(Ali)라는 가명을 써왔다. 튀니지의 악명높은 사이버경찰의 온라인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가명을 쓴다는 이유로 수 차례 그 페이지의 접속 차단 조치를 취했고 알리는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3주 후에 날라온 답변은 그의 여권을 스캔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다(thedailybeast).

이집트의 민중 봉기가 조직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생겼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우리 모두가 카레드 사이드다”(We are all Khaled Said) 페이지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혁명적 상황으로 갈라놓은 1월 25일 “분노의 날”을 조직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곳 중의 하나였다. 사이드(Khaled Said)는 부패한 두 경찰에 대한 비디오를 블로그에 올린 것 때문에 2010년 6월 6일 경찰의 보복성 폭력을 당해 살해되었고, 이 이야기는 알 자지라 위성방송이나 다른 곳이 아니라 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퍼져나갔다. 당시 여기에 40만 명 이상의 ‘팬’들이 가입해 이집트의 지긋지긋한 독재정치, 부패, 폭력, 빈곤을 성토했고, 바로 이 온라인 공론장에서 1월 25일을 “분노의 날”로 내걸고 민주화 시위를 조직하기 시작했다(jadaliyya). 2010년 11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부가 페이스북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는 얘기들이 나돌았고,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페이스북의 이 페이지는 관리자가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이 접근을 차단시켰다. 당시 이 페이지의 관리자는 이후 “페이스북 혁명”에 더해 그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된 구글의 임원인 웨일 고님(Wael Ghonim)이었다. 그가 12일 간 감금됐던 것도 당시 이집트 경찰이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를 조직하는데 활용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그의 역할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nytimes). 최대한 익명을 통한 온라인 활동이 가능해야 활동가들이 신변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페이스북은 서비스약관을 어겼다면서 실명을 요구했다. 어쩔 수없이 미국에 사는 이집트 이주민 활동가(Nadine Wahab)가 새로운 관리자로 나서 자발적으로 실명을 사용한 이후에야 그 페이지가 살아났다(thedailybeast). 실명을 제공하고 관리를 맡았던 와하브(Wahab)는 페이스북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다: “페이스북이 우리의 사적 정보를 사이트에 올리라고 했으면 그것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 아닌가?”

이런 일은 이집트의 여권 지도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를 지지하는 집단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해서도 있었고 튀니지, 시리아, 모로코, 홍콩 등에서도 있었다(businessweek). 페이스북은 오랫동안 자기 브랜드로 “실제 사람들을 위한 실제 네트워크”(real network for real people)를 표방해왔는데(jilliancyork), 그러고 보면 이것은 곧 인터넷 실명제(real name system)의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튀니지의 알리(Ali)는 말했다(thedailybeast): “페이스북의 관리자들이 우리를 도와야하는 것 아닌가? … 저들은 혁명을 지원하기보다 우리의 사적인 정보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인가?” 그렇다. 곧 6억 명에 이를 전 세계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가져다가 장사하면서 축적한 페이스북의 시장가치가 무려 미화 500억 달러(약 56조 원)라고 하니 그럴만 한 것이다.

유튜브에서의 시민 (감시) 미디어

플리커나 유튜브와 같이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웹2.0 서비스 또한 사회운동 활동가나 적극적인 시민들이 널리 애용하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이고, 이번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사회 변혁 운동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인권 침해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 시민 미디어나 유씨씨(UCC)의 확산은 시각적 재현에서의 인권 – ‘시각적 프라이버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가을 버마에서 20년이 넘는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민중 봉기가 있고 나서 정보기관이 시민이 촬영한 시위 현장 사진과 영상을 가져다가 조사해 시위자를 색출해내는 일이 있었다(witness). 또 2009년 이란에서 부정 선거 이후 번진 반정부 시위가 몇 주 동안 계속되다가 잦아들면서 경찰은 본격적으로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했는데, 소셜 미디어 덕분에 쏟아져 나온 시위자의 얼굴 사진과 비디오가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라자(Raja) 웹사이트에서는 160명의 얼굴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85개의 사진을 올렸는데, 이는 대부분 시민이 촬영해서 유튜브 등에 올린 비디오와 사진이었다(witness). 더 나아가 경찰은 시위 현장 사진들에 나온 얼굴을 보면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일을 도와달라고 이용자들에게 요청했다. 경찰은 ‘집단지성’의 도움으로 적어도 40명을 식별하고 체포할 수 있었다(leader-values).

출처: flickr.com

정치적 표현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촬영한 동영상이 문제가 되는 일도 있었다. 이집트의 여성 활동가, 아스마 마흐푸즈(Asmaa Mahfouz)가 민주화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비디오는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가 폭발적인 변혁운동으로 번지는데 촉매가 된 것의 또 하나로 언급된다. 하지만 정작 그 비디오를 만든 활동가는 그 영향력이 컸던만큼 무바락 체제 옹호자들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그녀는 당시 집권여당인 국민민주당(NDP) 당원들로부터 집밖으로 나오면 가족과 함께 죽을줄 알라는 살해 위협을 받은 것이다(gulfnews).

이런 사례들을 볼 때,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직접 채집하는 불법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표현과 행동을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고 다양한 표현과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사진이나 영상의 행동주의 미디어 역시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할 때, 이렇게 시민 미디어가 시민 감시 미디어로 활용되는 상황에 대한 파악과 대처가 필요하다.

국가의 해킹, 소셜 (미디어) 감시

정부가 인터넷 이용자의 개인 정보나 소통 내용을 함부로 추적하고 접근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공안과 치안을 아우르는 이명박 정부의 ‘경찰국가화’”(hr-oreum)나 “시민사찰”(jinbo)을 통해 이런 문제를 익히 겪고 있는 중인데, 아랍 혁명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튀니지에서 반체제 시위가 거세지면서 다급해진 정권은 아예 시위 조직화에 활용돼온 주요 웹사이트를 위장해 이용자 계정을 탈취하는 일까지 벌였다. 경찰이 페이스북, 구글 쥐메일, 야후 메일의 가짜 로그인 화면을 이용해 이용자의 계정 정보를 빼내는 피싱(phishing)을 감행한 것이다(darknet). 앞서 보았듯이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 때문에 인권 활동가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들이 빈번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가 그나마 페이스북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페이스북을 쓰게 되는데 이 때 비밀경찰을 피해서 최대한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용해왔다(nytimes). 튀니지 경찰은 바로 이러한 반체제 운동 관련 페이지들을 운영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의 이용자 계정을 해킹하기에 이른 것이다. 앞서 알리(Ali)의 경우 가명을 유지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온라인 활동가들은 경찰에 체포되었다(thedailybeast). 페이스북(실명제)과 억압적 정권이 만난 결과는 사회운동 활동가나 비판적 목소리를 낸 시민의 체포와 감금과 고문이었다.

경찰의 피싱이 정권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일상적으로 아랍의 독재정권들은 주로 미국에서 수입한 발전된 정보기술(IT)을 통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인터넷의 동향을 감시해왔다. 이런 격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튀니지에서는 인터넷 검열을 위해 ‘보안 컴퓨팅’(Secure Computing)이라는 맥아피(McAfee)가 인수했던(지금은 인텔이 사들인) 미국 기업이 제공한 ‘안보’ 혹은 ‘보안’ 기술을 사용해왔다(businessweek). 또한 이스라엘 기업이었다가 지금은 미국의 보잉사가 소유하고 있는 나러스(Narus)사는 이집트 텔레콤에 패킷감청 장비를 팔고 이집트 정부의 감시 활동을 도운 기업으로(savetheinternet, democracynow), 대한민국에서 지난 2010년 초에 문제가 불거졌던 ‘심층 패킷 사찰’(Deep Packet Inspection, DPI) 장비를 케이티(KT)에 판 곳이기도 하다(narus; jinbo). 패킷감청은 인터넷에 흐르는 내용을 걸러내기 위한(content-filtering) 기술로서 네트워크 관리자는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이용자가 이용하는 특정한 내용이 라우터를 통과할 때 검사하고 추적할 수 있다(techliberation).

뿐만 아니라 나러스는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를 추적하는 기술도 개발해왔다. ‘혼’(Hone)이라는 건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성별, 국적, 연령, 위치, 집주소, 직장주소와 같은 수백만의 프로파일을 뒤지면서 통계적으로 근사치에 있는 목표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혼(Hone)은 또 노트북이나 휴대전화와 같은 이동성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도 추적할 수 있다(itworld). 이는 대한민국에서 정부와 대기업이 4만 2천여 개에 달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그 모니터링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2009년 이란의 반체제 시위 때도 핀란드와 독일의 합작 모험자본인 노키아 시멘스(Nokia Siemens)가 이란 정보통신부에 온라인 활동가들을 추적하고 감옥에 가두는데 사용되는 기술을 팔았던 적이 있다(democracynow). 이렇게 사회운동과 민중 봉기를 탄압하고 억압하기 위한 정보 (감시) 기술의 개발과 판매는 미국 정부와 군산복합체가 각국 정부와 협력해온 더 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집트에서 시위대에게 발포된 최루탄과 경찰 및 군대가 사용한 여러 시위 진압 무기는 대개 미국의 군수산업체(Combined Systems International)에서 제조해 수출한 것이다(commondreams).

“Made in U.S.A.” (출처: News Pictures/MCP / Rex Features @ telegraph.co.uk)

미제 최루탄과, 페이스북의 실명제나 그 이용자를 감시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은 정치적 맥락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테러리스트였던 혁명가, 감시 도구로서 혁명적 미디어

그래서 아랍의 변혁운동 과정과 (소셜) 미디어 행동주의에서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권과 기업의 감시과 통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내 민중 봉기와 사회 변혁에 이르렇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국가권력의 온갖 탄압과 억압을 뚫고, 그러면서 구타, 감금, 고문, 학살의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겪으면서, 결국 체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멈추지 않는 인민의 투쟁은 새삼 위대한 일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와 이집트 무바락 정권은 동맹국임을 의심하지 않았다(aljazeera). 그런 식의 동맹 관계 속에서 나러스와 같은 기업이 판매한 감시 기술 상품을 이용해 미국과 아랍의 독재자들은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들”(techliberation)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안보 활동을 해왔다. 민중 봉기와 체제 변혁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되지 않았더라면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였을 사람들(aljazeera). 이들이 현재 미국의 지배 미디어 보도에서조차 민주주의 혁명가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새삼 역설적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회 변혁 운동을 조직하는데 적절히 활용되었더라도, 그 이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과 사회 정의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활동가와 시민을 때려잡는 기술로 활용된 페이스북을 가지고 “페이스북 혁명”이라며 이 운동을 명명하는 것 또한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수 년에서 수십 년동안 이 혁명이 조직되는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