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독점 깨뜨리기
아래의 내용은 [위키세상: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경제와 참여미디어의 약속] 3장 “근본독점들(radical molopolies)”을 요약하며 토론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와 내용 정리의 이유는 여기: [온라인세미나제안] 디지털 리터러시의 정치경제학과 참여 미디어의 약속
이 장에서 수오란타(J. Suoranta)와 바덴(T. Vadén)[다음부터 저자들]은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말한 ‘근본독점’(radical molopoly)을 현대사회의 정보/지식 생산과 소비의 방식들에도 적용하면서, 위키백과를 비롯한 사회적 미디어의 사례를 통해 근본독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근본독점’(radical molopoly)이라는 말은 이반 일리히(Ivan Illich)가 [공생공락의 도구들](Tools for conviviality)라는 책에서 (아마도 처음) 사용하였다.
Ivan Illich, 1973. Tools for conviviality. 1st ed. New York: Harper & Row; [성장을 멈춰라!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이한 옮김. 2004. 미토. 영어 원문은 여기서 모두 볼 수 있다: http://opencollector.org/history/homebrew/tools.html
래 디컬(radical)은 흔히 ‘급진적(인)’이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그 어원이 ‘뿌리’임을 상기할 때 ‘근본적(인)’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근본(적인) 독점이라고 하면 뿌리에서부터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이를 통해 일리히는 산업적 생산 양식(과 문화)이 지금껏 다양하게 존재해온 인간의 필요와 욕망의 충족 과정과 방식을 배제하면서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정한 재화의 생산과 소비 방식에 대한 독점이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배타적 독점의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보면, (일반) 독점이 “하나의 기업이 하나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혹은 판매) 수단에 대해 배타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면, 근본독점은 “생산물의 한 유형이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의 산업 생산 과정이 간절한(pressing) 요구의 충족 [방식]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고 그와 경쟁하는 비-산업적 활동을 배제”하기 때문이다(Illich 1980: 56; 한글판 90; Suoranta & Vadén 2008: 55). 이 책의 주제와도 연관된 한 예로 (근대적) 학교 제도는 배움(학습)에 대한 근본 독점의 형태인 셈이다. “배움을 교육과 훈련으로 재규정하면서 비산업적 활동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독점은 자연스럽게 “강제적 소비, 개인의 자율성 제한, 사회적 통제”(Suoranta & Vadén 2008: 55 다음부터는 쪽수만 표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제인 미디어에 있어서의 근본독점의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지만, 미디어에서 근본독점의 문제는 보드리야르가 말한 응답없는 일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발언의 독점 [체계]이다(쟝 보드리야르. 1998. “대중매체를 위한 진혼곡.”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문학과지성사. 192). 즉, 현대의 대량 미디어(혹은 방송 미디어)는 그 체계(system) 수준에서 발언의 독점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좌파적인 관점의 언론이든 시청자 제작 참여든 그것이 미디어의 다양성이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환상은 제공할지몰라도 그 발언의 독점 구조에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의 강화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본다. 조중동과 한경은 특정한 층위에서 다르지만, 근본적 층위에서 다르지 않다. 벤클러[Benkler, Y. 2000. “From Consumers to Users: Shifting the Deeper Structures of Regulation Toward Sustainable Commons.” Federal Communications Law Journal, 52(3)] 를 참조하여, 미디어 체계를 하부구조, 논리구조(코드), 내용구조(콘텐츠)의 3층위로 나눠볼 수 있는데 대량 미디어에서 발언의 근본독점은, 하부구조에 있어서는 그 소유와 통제의 문제와 연관되고 내용구조에 있어서는 특정한 내용(콘텐츠)이 담아내는 메시지와 그 미학적 형식의 문제와 연관되지만, 무엇보다도 논리구조(코드)의 층위에서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발언(과 소통)의 형식이 기술적으로 언어적으로 법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일종의 미디어 장르(혹은 미디어 미학 일반)를 규정하기 층위가 여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코드의 층위에서 발언의 근본독점을 깰 수 있는 대안들이 더 많이 실험되고 창안되어야 한다.
저자들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독점되고 있는지를 보이면서 오늘날 디지털화된 정보와 지식의 근본독점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63 전후). 추가적으로 드는 생산 비용(재생산 비용 혹은 복제 비용)이 거의 없는 디지털 정보로서 소프트웨어는 희소하지 않은 재화(정보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희소한 것처럼 되어 시장에서 판매되고 구매되고 있다. 정보재에 대한 이러한 인위적인 희소성은 지적재산권(특허, 상표, 저작권), 복제방지 기술, 문서 포맷에 대한 특허, 하드웨어에 대한 특허라는역사적으로 고안된 장치들 없이는 불가능하다(63). 저자들은 개발된 나라들에서는 일상생활의 도구가 된 책상 컴퓨터(desktop) 공간이 이러한 인위적인 희소성의 창출하고 개방성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근본독점화되고 있다고 본다.
그 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인위적인 희소성의 창출이 디지털 형태의 정보(재)만 두고 벌어져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물질적인 정보(재)가 갖는 희소성은 자연적이지 않고 (국가폭력에 기반을 둔) 인위적 법제도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자칫 물질적인 재화는 자연적으로 희소하다는 점을 전제하게 되지만, (적어도 맑스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모든 물질적 생산물이 갖는 희소성 역시 마찬가지의 인위적인 장치가 작동하며 보장된다. 배타적 재산 소유는 역사적 현상이며 비교인류학적으로 문화적 현상이고, 그것이 저작권 등에 의해 정보(재)에 대해서까지 적용될 때 이제까지 자연스러워보였던 그 희소성이 만들어진 인위적 과정이 가시화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로렌스 레식 등의 저작권 개혁운동가들은 디지털 형태의 정보가 갖는 특성과 그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의 적용이 갖는 모순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유시장과 시장교환은 문제없고, 오히려 자유시장을 위해 정보에 대한 배타적 독점 소유권의 부여를 반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와 지식 생산에서의 근본독점에 균열을 내는 현상들이 등장해왔고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위키백과가 그것이다. 위키 기술은 네트워크(인터넷)에서의 자유를 추구해온 역사적 흐름, 특히 해커윤리와 해커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65), 단적으로 위키백과 프로젝트(wikipedia.org)는 자유소프트웨어(free software)를 생산해온 해커 노동에 기초하고 있다. 즉, 위키백과 소프트웨어가 자유소프트웨어이며, 그 백과의 내용(콘텐츠) 역시 (그 인위적 희소 성을 조장해 배타적 소유권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한) 저작권(카피라이트)에 의존하면서 그것을 뒤집어(카피레프트) 재배포와 재수정의 권리를 부여하는 ‘그누 일반공중이용허락’(GNU GPL) 하에서 생산되고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의 이용허락은 ‘그누 자유문서이용허락’(GFDL: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로서 무엇보다도 그 문서 내용이 사유화되는 것을 막으면서 공유지로 유지될 수 있게 하고 있다.
저자들은 자유소프트웨어에 기초한 위키 기술과 카피레프트 이용허락의 조합이 [근본독점을 깰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지식노동’(knowledge work) 방식을 창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66).
이 새로운 지식 생산방식에 대한 관련 논쟁으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Hardt, Michael & Negri, Antonio (2004). Multitude. London: The Penguin Press. 301ff
Žižek, Slavoj (2002). A Cyberspace Lenin: Why Not? Issue 95 of International Socialism Journal. <http://pubs.socialistreviewindex.org.uk/isj95/zizek.htm>; 슬라보예 지젝, “사이버스페이스 레닌?”,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슬라보예 지젝, 정영목 옮김, 지젝이 만난 레닌 –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교양인, 2008
Žižek, Slavoj (2006). No One Has To Be Vile. London Review of Books, Vol. 28 No. <http://www.lrb.co.uk/v28/n07/zize01_.html >
Merten, Stefan (2000). GNU/Linux – Milestone on the Way to the GPL Society. <http://www.opentheory.org/gplsociety/text.phtml>
위키백과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 생산과정에 있어서 ‘소외없는 자발적 노동’이고 그 분배과정에 있어서 지식의 민주화이다. 저자들은 지식의 민주화로서 위키백과가 구텐베르크적 잠재력이 있다고 보는데, 인쇄 미디어와 다르게 디지털 정보이니만큼 그 규모에 있어서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66).
저자들은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 혹은 페다고지의 차원에서 2가지 정치적 자유가 있다고 보는데, 내적 차원에서는 위키백과 내용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외적 차원에서는 위키백과 그 자체(whole entities)에 초점을 맞추어 발견할 수 있다(67-9). 단적으로 내용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의 역사(history 기능)을 볼 수 있고, 확정되기보다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은 별도의 토론(discussion 기능)이 이루어지는 것이 위키백과가 보여주는 이상적 커뮤니케이션을 구성하는 일부 요소라고 본다. 그 이상적 커뮤니케이션은 근대 계몽기에 신문 미디어가 보급되면서 공중의 탄생으로 가능해졌지만, 실상 그 미디어 공론장에 공중이 없어왔다면, 이제 이러한 위키기술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70).
결 국, 위키백과와 같은 사회적 미디어의 등장은 후기 희소성과 소외되지 않은 노동 양식, 지적 노동의 새로운 형태들의 패러다임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72, 74). 물론 아직까지는 이 사회적 미디어에 접근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남성, 북미, 고학력 등으로 제한되는 지정학적 편향을 보이고 있지만 말이다(74).
덧붙여, (근본)독점과 독점문화의 문제
이 근본독점 깨기를 기획하기 위해 문화의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일리히는 “상업적 독점을 깨는 일은 독점으로 이윤을 얻는 소수만 손해를 보게 만든다. 보통, 이들 소수가 독점을 깨는 사태를 피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긴 해도 말이다. 반면에 근본 적 독점은 대중에 의해 탄생되었다. 따라서 대중이 이 독점을 유지하는 비용을 계속 대지 않기로 결정하여 독점을 끝내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점을 깨달을 때만 근본적 독점은 깨진다”(한글판: 96)고 봤다. 즉, 근본독점은 문화의 문제인 셈인데, 이를 독점문화라고 불러보자. 특별히 근본독점문화라고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일반)독점과 근본독점의 개념적 구분은 현실에 적용될 때 엄격하게 구분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연속적인 관계가 있다고볼 수 있기 때문이다(자본주의적 산업 생산 체계 하에서 독점은 곧 근본독점을 지향하거나 이미 근본독점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근본독점을 깨기 위해서는 특정 기업의 재화와 서비스의 소비 시장에서의 독점, 그리고 그것의 강화된 형태로서 근본독점이 가능하도록 하는 독점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가능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저자들은 ‘자유’의 문제로 이를 논의하고 있는데 이 ‘자유’가 일상생활에서의 실천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영역을 통과하면서 수많은 굴절들을 거치게 된다. 단적으로, 워키백과라고 하는 사회적 미디어가 새로운 지식 생산과 분배 – 소외되지 않은 노동, 배타적이지 않은 공유를 보여준다고 했으나, 그 사회적 미디어가 작동하는 논리구조(코드)의 층위에서의 근본독점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글판 제목인 “성장을 멈춰라! –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가 드러내듯이, 근본독점은 (경제)성장이라는 강력한 사회경제적 동인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 성장의 계열에는 발전, 진보, 개발, 혁신, 창조, 계발 등이 포함되는데, 특히 혁신, 창조, 계발의 문제로 오게 되면 사회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이러한 근본독점의 동인들이 작동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이러한 자기 계발 등의 인간형과 일상생활 방식과 문화의 (재)조직화(혹은 ‘생활세계의 식민화’ 혹은 사회적 노동[문화]의 구조조정)를 독점문화로 분석하며 비판할 수 있고, 그 비판과 짝을 이루는 대안의 가능성들은 바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성 혹은 창조적 행위)과 어떻게 그런 지배 문화에 대한 대항의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 있는지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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