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피(p2p), 민중에게 권력을!
출처: 인권오름 220 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0년 09월 29일 (http://hr-oreum.net/article.php?id=1566)
피투피(p2p), 민중에게 권력을!
1990년대 후반 미국, 학교 기숙사에 살던 대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엠피쓰리(mp3)를 다운받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mp3를 제공한 곳들은 대역폭을 과도하게 잡아먹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음반산업의 압력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들쑥날쑥했다. 당시 대학생이자 해커였던 숀 패닝(Shawn Fanning)은 좀 더 안정적으로 음악 파일을 얻을 수 없을까 해결책을 고민하면서 이용자들끼리 직접 파일 공유를 할 수 있게 한 p2p(피투피) 방식의 냅스터(napster)를 개발해냈다. 1999년이었다.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이듬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음반산업의 고소를 당하고 그 다음 해 법원의 사이트 폐쇄 명령을 받았다. 냅스터는 이용자들이 직접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이었지만 공유 파일 목록을 중앙 서버에 모아 제공했기 때문에 이것이 법적 공격의 핵심 대상이 되었다. 냅스터를 맛본 이상 봇물처럼 터진 p2p 파일공유 네트워크문화는 냅스터가 사라진다고 해서 함께 사그라들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그런 공격의 빌미를 없앤 냅스터의 대안들이 벌써 개발되고 있었다. 중앙 서버 없이도 분산적으로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인 그누텔라(Gnutella)와 카자(Kazaa) 등이 속속 나타났다.
음악이 된다면 영화는 어떤가. 영화나 티브이(tv) 방송물은 음악 파일보다 몇 십 배나 큰 대용량 파일이기 때문에 내려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생겼다. 이 때 또 한 명의 비정규 개발자이자 해커였던 브람 코헨(Bram Cohen)이 개발해 내놓은 빛토런트(BitTorrent)는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2001년이었다. 빛토런트는 내가 여러 또래들로부터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때 받는 족족 또 다른 또래들에게 동시에 업로드해준다. 내가 내려받는 파일이 많고 빠를수록 네트워크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 더 많아지고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식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p2p 앱: 기술의 정치
당시 우리가 p2p에 놀랐던 것은 미디어산업과 법제도의 억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이어진 p2p 기술과 그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 다음부터 앱)들이었고, 또 이 분산화 기술에 기초한 네트워크에 너도나도 접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만든 공유문화였다. 소비자로만 규정되던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적극 찾아나설 뿐만 아니라 널리 알리며 남들에게 전해주는 일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이미 풀뿌리문화는 그래왔지만 이번에는 대량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그리한 것이 달랐다. p2p 기술 덕택에 그저 얼굴도 모르는 님들이 전해주는 것들을 받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공유 네트워크에 기여하는 식이었다.
문화생산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다 잘 전해지면서 그 사용가치의 실현은 아주 효율적이다. 반면, 지금껏 문화생산물의 배급과 유통을 전담해온 미디어문화자본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먼저 돈으로 교환되어야 할 가치의 실현 기회를 상실함은 물론 그 교환 과정을 도맡으며 누려왔던 소비와 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력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이렇게 p2p는 시장 교환과 통제의 매개의 정치경제(학)을 실천적으로 지양하는 풀뿌리 기술문화가 되었다. 이 때 또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은, 그 매개가 동반하는검열과 통제에 맞선 기술 저항문화가 그누텔라나 자유넷(freenet)과 같은 지속적인 p2p 기술의 개발과 발전을 추동해왔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p2p다
이와 같이, p2p라는 용어가 정보산업과 정보문화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 2000년 전후의 일이었다. 널리 알려진 것이 그 때이지만, p2p는 그 훨씬 전부터 존재해왔다. 컴퓨터간 통신을 위한 가장 오래된 통신 하부구조가 p2p다. 또 도메인 이름 시스템(DNS), 유즈넷(usenet), 세티앳홈(SETI@home), 혹은 여러 메신저 프로그램도 p2p 기술에 바탕한 것들이고, 무엇보다 인터넷 자체가 p2p 구조다. 1969년에 등장한 인터넷의 원조격인 아르파넷(ARPANET)은 서로 협력하는 이용자들이 동등하게 연결되는 P2P 네트워크를 기본으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파넷을 개발한 사람들이 곧 그것을 이용했기 때문에 생산자와 이용자의 구분 자체가 불필요했다. 그래서 네트워크의 소유자나 관리자에게 요청하고 기다리거나 허락을 맡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유롭게 실행해 보고 네트워크에 제공하여 모두가 아무런 차별과 제약없이 이용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초기 인터넷이 디자인된 철학이었고, ‘끝에서끝 (end to end, e2e)’ 원리라고도 불렀다.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 그런 문화가 지속된 덕에 인터넷은 그 누구의 소유물로 전락하지 않고 무주공산으로 모두가 푸르게 푸르게 가꿔온 정보 공유지(information commons)가 될 수 있었다. 인터넷의 기술 철학이자 설계 원리인 e2e와 p2p는 공유지에서의 잉여의 수탈을 가능하도록 하는 중앙집중적 통제의 매개가 필요없는 직접적 생산 관계를 함축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비교해볼 때 초기 인터넷은 그렇게 급진적으로 디자인될 수 있었다.
인터넷 정보공유지의 종획(enclosure)
인터넷에 돈으로 교환되어야 할 정보가 유통되기 시작하고 보안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터넷의 p2p 구조는 변경되어야 했다. 1990년대 초중반이었다. 특히 1994년에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인터넷은 사이버(및 사이비)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에서 또 하나의 대량미디어로 급격히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애초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가 서버이자 클라이언트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직접적이고 평등한 생산 관계는 네트워크에 방화벽이 설치되고 유동 아이피(IP) 주소가 증가하고 네트워크주소변환(NAT, Network Address Translation)이 널리 사용되면서 서서히 파괴되어 갔다.
그리고 1990년대 말, 비대칭 대역폭의 방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거의 모든 집과 사무실의 인터넷 연결(모뎀이나 ISDN)은 데이터를 보내고 받는 것이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대칭 구조였다. 인터넷 연결 속도에 대한 디자인 자체도 정보의 생산과 소비를 구분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다운로드 속도에 비해 3배에서 8배까지 업로드 속도가 느려진 비대칭적 대역폭의 구조로 바뀌어갔다. 이는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이 서버보다는 클라이언트로, 정보의 생산자나 배급업자라기보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 이용하는데 그치는 소비자로 격하된 것을 뜻했다. 이렇게 인터넷의 평등한 생산 관계의 형성은 서서히 대형 포털 사이트와 같은 중앙통제적인 매개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위계구조로 대체되었다.
다시 p2p 앱, 그리고 웹2.0 혹은 종획2.0
인터넷이 상업화되고 재개발되던 바로 그 때에 등장한 것이 바로 냅스터, 그누텔라, 자유넷의 p2p 앱들이었다. 인터넷 자체가 p2p 였지만 상업화되고 상품화된 정보가 대거 유통되면서 변경된 구조에서는 p2p를 일부러 구현해야 하는 프로그램들이 인터넷을 살려갔다. 이는 통제와 검열에 대한 저항이었고, 정보 상품화와 인터넷의 상업화에 대한 정보 공유지의 반격이기도 했다. 그 반격은 법정에서의 잇따른 패소와 각 p2p 앱들의 상업화(냅스터, 소리바다 등)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에 버금가는 “불법복제와의 전쟁”으로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용자들은 그렇게 소비자로만 붙들어두려는 지배적 기술과 공유지의 종획에 대항하여 문화생산물의 배급과 유통에 적극 나서는 일을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제작한 문화생산물이나 온-오프라인에서 공동으로 만든 것들을 네트워크 세상에 풀어 놓았다. 이것이 어느 정도 규모에 다다르면서 무시할 수 없는 정보생산의 큰 줄기를 형성하자 또 한 편의 뉴미디어문화자본들은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할 궁리를 했고, 유씨씨(UCC)나 웹2.0, 최근의 소셜 미디어라는 말들은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마케팅)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때 뉴미디어 기업들이 이용자들의 p2p 공유를 막아서고 때려잡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해볼 요량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중앙집중적 통제의 매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핵심 과제는 중앙집중적 통제가 작동되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유즈넷이나 PC통신 때부터의 p2p 네트워크에서 보인 역동적인 참여와 공유의 생기를 계속 발산하도록 북돋는 것이었다. 웹2.0이 개방, 접근, 참여, 공유의 가치를 드높여도(진보분칠!) 문제없게 된 사정도 거기에 있다. 다른 무엇이 아닌 이용자 개개인의 세세한 정보와 행위의 흔적들이 개방, 접근, 참여, 공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방목과 같은 이용자들의 상호작용 과정이 그럼으로써 생산되는 가치를 전유할 수 있는 매개의 통제 구조에 붙들려 있도록 하는데 문제 없게 된 것이다.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라는 말 자체가 마치 우리가 직접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발전시키는 것처럼 들리지만 말이다.
하여 웹2.0을 앞세운 지난 수 년간의 지배적 인터넷 문화는 1990년대 초중반에 벌어진 인터넷의 상업화에 대항하며 등장한 p2p의 정보 공유지(공공의 부)를 다시 사적으로 전유하는 뉴미디어자본의 운동이 주도해왔다. 웹2.0은 그래서, 인터넷의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발전의 2.0 세대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 공유지에 대한 정보 자본의 두번째 종획의 흐름, 곧 종획2.0이다. 그렇게 저들의 사업이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p2p, 민중에게 권력을(power 2 the people)!
그러니 온전한 의미의 탈중심적 분산 네트워크 체계를 구현하는 p2p는 이미 언제나 대안으로 존재해왔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인터넷 서비스는 p2p 방식으로 대체 가능하다. 구글닷컴은 검색에 있어서는 우리의 모든 검색 행위와 검색 결과를 수집, 축적, 분석하여 한데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광고주에 팔며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그런 중앙집중적 검색 엔진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검색 기능을 제공할 목적의 ‘또래검색’(peer search, peer-search.net)같은 것도 있다. 물론 구글만큼 검색 결과가 아직! 만족스럽지 않지만 우리의 참여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다. 사실상 우리의 참여와 지지와 지원에 힘입어 인터넷은 다시금 ‘공생공락의 도구’이자 자율적 공간이 되어왔다.
p2p 기술과 문화를 전유해 번창하고 있는 웹2.0이 야기하는 거대한 감시와 통제와 검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다시 p2p다. 표현의 자유와 자율적인 공유문화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p2p 기술들은 그러나 대체로 주변화되어 있고 우리 관심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 자본의 투자가 엄청나게 이루어진 것들과 비교하면 이것들은 볼품 없고 쓰기에 어색하고 한글로도 안 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내 친구들이 쓰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기술은, 볼품 있고 쓰기에 이용자친화적이고 한글로도 되어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만큼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구글닷컴이 잘 보여주듯, 표현의 자유와 자율적인 공유문화를 위한 기술에까지 자본의 투자가 있게 되면 그것은 곧 웹2.0과 같이 공유지를 샅샅이 종획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따라서 p2p와 같은 민중의 기술이 문화적으로 꼴값을 하고 정치적으로도 그 의의를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투자나 모험자본(최근에는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풀뿌리 공동체의 집단적 협력의 투자와 ‘모험코뮨’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참고한 것
- 넬슨 미나(Nelson Minar), 마크 헤들런드(Marc Hedlund), 2001, “Peer 네트워크: 역사를 통해 고찰한 P2P 모델,” <차세대 인터넷 P2P>, 한빛미디어.
- Dmytri Kleiner, Brian Wyrick, 2007, “InfoEnclosure 2.0”[정보종획2.0], Mute magazine – Culture and politics after the net.
- Janet Abbate, 2000, Inventing the Internet[인터넷 발명하기]. MIT Press.
- Janko Röttgers, 2004, “P2P: Power to the People”[피투피: 민중에게 권력을], Sarai Reader 2004: Crisis/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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