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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위키유출(Wikileaks)들과 ‘대안 인터넷’

출처: 인권오름  236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1년 1월 26일 (http://hr-oreum.net/article.php?id=1676)

아래, 대안을 이야기하기 전에 위키유출(Wikileaks)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어야 한다.

수많은 위키유출(Wikileaks)들과 ‘대안 인터넷’

이 글은 ‘대안 인터넷’ 전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위키유출’(Wikileaks) 사태에서 드러난 인터넷의 사유화 및 정치·경제적 검열과 그에 대한 다양한 대항 사례를 보면서 (대안 미디어처럼) ‘대안 인터넷’을 구축해가는 운동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추적해보려는 것이다.

(인터넷을 지배하는) 권력의 실체

위키유출을 인터넷에서 아예 제거하려는 시도들이 연달았다. 우선 미국, 중국, 이란, 프랑스, 호주 등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국 시민들이 위키유출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했다. 위키유출의 외교전문 폭로가 있은 직후 몇몇 해커들이 미 국방성이 뒤를 봐준 상황에서 혹은 자발적으로 위키유출 웹사이트에 분산 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퍼부었다. 유수의 인터넷 기업들과 금융 기업들이 위키유출의 퇴출 작업에 가세하면서 위키유출이 차마 폭로하지 못했던 권력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12월 3일 인터넷 도메인 업체 ‘에브리디엔에스’(EveryDNS.net)는 위키유출이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아 위키유출 도메인이 자사를 이용하는 약 50만 개의 다른 웹사이트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이에 대한 접속을 차단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도메인 이름 시스템(DNS)의 사적이고 중앙집중화된 관리구조를 통해 인터넷에서의 검열이 어떻게 가능한지 잘 보여주었다.

또, 위키유출의 일부 서버가 아마존의 ‘웹서비스’(aws.amazon.com)에 있었던 모양인데, 이 역시 외교전문 폭로 직후 그 서버 호스팅이 중단되었다. 이에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논란이 됐는데, 아마존이 댄 이유는 “논쟁적 데이터가 호스팅하는 웹사이트에 있는 것은 좋은데,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자기 데이터가 아닌 위키유출의 경우, 무고한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고 …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줄 데이터의 출판”으로서 이용약관 위반이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구름 전산’(cloud computing) 사업에 미국 정부가 최대 고객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굳이 정부의 협조 요청 전화 같은 것은 애초 불필요했을 듯하다. 그런데 설령 그것이 아마존의 말대로 정부의 압박과 삭제 요청이 아니라 아마존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다고 한다면, 괜찮은가?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대부분 비용이나 편리함의 이유로 기업의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거의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서버 시스템을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기업이 직접 누가 법을 어겼는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곧 인터넷 정보 전체를 자의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알려준다.

사실 국가 권력의 정치적 검열만이 아니라 인터넷의 주요 하부구조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기업들의 (정치)경제적 검열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더욱 심각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단지 위키유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차 구름 전산의 형태로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서버를 확보하지 않고 기업이 원격으로 제공하는 서버·저장공간·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이번 사태는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서버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외부 압력에 의해 혹은 자체 검열 체계(이용약관 등)를 통해 기존 언론사나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과 대안 언론 활동을 곧바로 중단시킬 수 있다. 게시물에 이적 표현물이 있는지 포르노물이 있는지를 열어보기 위해 경찰들이 서버실(데이터센터)에 들이닥치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 없이 평화롭게(!) 어딘지 모르는 ‘구름’ 저편에서 슬그머니 처리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위키유출 활동 자금과 후원금의 흐름을 끊는 금융 탄압이 있었다. 스위스의 포스트파이낸스 은행이 어산지의 은행계좌를 폐쇄했고, 페이팔은 위키유출에 대한 후원계좌를 차단했으며, 마스트카드나 비자 역시 위키유출에 대한 자금 결제서비스를 중단했다. 인터넷을 통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이 동원된 셈이다. 도메인이나 웹호스팅 기업이 그랬듯이 이들 금융 기업은 미 정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독자적인 판단으로 내린 조치라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외부 압력에 따른 것이든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든 지구적 금융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자본이 곧 권력이라는 것을, 그저 돈줄을 끊는 것으로 검열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줬다. 덧붙여, 러시아의 한 앱 개발업체가 애플의 아이튠즈에 올린 아이폰용 위키유출 앱은 “어산지가 미국 법정에 설 경우 필요한 변호 비용 모금을 거들기 위해 앱 판매 수익의 절반가량을 위키리크스 측에 기부하겠다”고 한 것인데, 애플은 앱을 통한 기부 권유를 금지하는 애플의 지침을 어겼다면서 12월 21일 앱스토어에서 이를 삭제했다. 상관이 있는건지 모르지만, 그 몇 주 전에 미 육군이 아이폰 혹은 안드로이드폰을 모든 병사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라는 보도있었다.

수많은 위키유출(Wikileaks)들, 그리고 ‘대안 인터넷’의 가능성

위키유출에 대한 입체적 탄압이 계속되자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익명 공동체 ‘무명씨’(Anonymous)가 반격에 나섰다. 2010년 중반 내내 이들은 피투피(p2p) 파일공유 공동체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 집행에 앞장서온 여러 정부기관 및 민간 단체를 목표대상으로 분산 서비스거부 공격을 하며 ‘보복작전’(operation Payback)을 벌여왔는데, 이를 위키유출에 대한 보복작전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무명씨는 12월 6, 7, 8 연일 스위스은행, 페이팔, 마스터카드와 비자, 아마존, 어샌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스웨덴 검찰청 웹사이트 등을 공격했다. 물론 이들의 해킹 공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여기서 언급할만한 것은 상당한 해커 공동체가 어산지나 위키유출을 지지한 것이 아닌 것처럼 위키유출을 지지하는 무명씨의 해킹 공격에 대부분의 해커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2010년 12월 ‘카오스컴퓨터클럽’(CCC)의 27회 해커회의(Chaos Communication Congress)에서 기조연설을 한 롭 공그립(Rop Gonggrijp)은 우리가 인터넷 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고 할 때 그것은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디도스 공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트토렌트’는 위키유출이 공개한 문서의 분산적 배포와 다중적 공유에도 잘 활용되었다. 비트토렌트는 대용량 디지털 파일을 이용자들 간의 직접 연결을 통해 올리고 내려받는 피투피(p2p) 파일공유 통신규약(protocol)이자 프로그램이다. 냅스터나 소리바다 등이 2메가에 가까운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데 쓰였다면, 비트토렌트는 주로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파일 공유에 쓰이고 전세계 인터넷 교통량(traffic)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 저작권체제의 관리자 관점에서 볼 때 불법복제 해적질의 주요 도구인 셈이다. 이 역시 냅스터와 그 이후 그누텔라(Gnutella), 카자(Kazaa) 등과 마찬가지로 해킹 지하문화의 소산인데, 그런 가족유사성을 배경으로 정보상품의 대량 유출을 도우며 그 유통의 감시 통제권(저작권)을 무력화시키는 도구가 자연스럽게 국제정치를 뒤흔드는 기밀 유출의 정치적 도구로 된 것이다. 피투피(p2p) 기술의 디자인 특성상 우리가 이 위키유출의 폭로 문서 파일을 내려받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유출 문서의 배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더 나아가 더 이상의 유출과 확산을 막기 위해 위키유출 웹사이트라면 그 도메인을 삭제하고 서버 호스팅을 중단하면 되지만, 일단 이것이 비트토렌트와 같은 피투피(p2p) 파일공유를 타기 시작했다면 인터넷 자체를 폐쇄시켜야 가능하다.

도메인과 서버가 차단되자 전세계적으로 1,000여 군데 이상의 웹사이트가 위키유출의 유출 문서를 똑같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미러링’을 제공했다. 미러링 사이트 중에는 디지털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오우니(Owni.fr)나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libération.fr), 덴마크 신문사인 폴리티켄(Politiken) 등도 포함되었다. 흥미롭게도 폴리티켄(Politiken)의 서버는 아마존의 웹서비스에 있는데 좇겨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느 한 미러링 사이트는 혹시 모를 디도스 공격을 이유로 인터넷서비스업체(ISP)가 그 계정을 삭제해버렸다. 디도스 공격을 받을 잠재성만으로 검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키유출 미러링 네트워크 세계지도

인터넷에 존재하는 거울 기술(mirroring)은 현실에서처럼 단지 그 외양의 이미지만을 (허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디지털 정보 전체를 복제해서 마치 손오공이나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무한한) 자기복제를 가능하게 한다. 위키유출이 도메인 이름(DNS) 호스팅과 서버 호스팅을 거부당했을 때, 이렇게 위키유출을 수 백 개, 수 천 개로 동일 복제하는 거울들이 생겨났다. 더 나아가 네트워크 상의 거울은 형태변환도 가능해서 대체로 애초의 위키유출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지만 일부는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 창조적 변이의 경향은 하나가 지역화라면, 또 하나는 탈중심화로 갈래쳤다. 먼저 3년동안 위키유출의 대변인으로 활동한 다니엘 슈미트(Daniel Schmitt)는 어산지의 권위주의와 위키유출의 중앙집중화 방식을 비판하며 2010년 9월에 위키유출을 나와 몇몇 해커들과 탈중심화된 방식의 ‘열린유출’(openleaks.org)을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편집자 혹은 관리자(admin)의 권한을 분산시키면서 공동체 참여를 통한 정보 유출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디자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화를 위한 여러 복제 사이트들은 위키유출을 해킹(혹은 갈래치기[porking])한 다양한 변이들이다. 발칸유출(BalkanLeaks), 브뤼셀유출(BrusselsLeaks), 인도네시아유출(IndoLeaks), 이스라엘유출(israeliLeaks), 필리핀의 피노이유출(Pinoy Leaks), 체코 해적당의 해적유출 (Pirate Leaks), 러시아의 라스필(Rospil), 태국외교전문(thaicables) 혹은 태국유출(Thaileaks), 튀니지유출(TuniLeaks) 등. 피노이유출의 경우 위키유출처럼 주류 언론과의 제휴를 통한 문제적 폭로 방식이 아니라 관련 블로그들과 협력한다. 튀니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대한 뉴스 보도들은 튀니지유출의 역할을 상당히 과장하고 있지만 위키유출의 수많은 지역화 혹은 탈중심화된 복제판들이 갖는 잠재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신분 노출 없이 제보가 가능하다는 근거로 ‘G메일(4riverleaks@gmail.com)’ 등의 사용을 들고 있어 걱정이 크지만, 국내에서도 ‘4대강리크스’(4riverleaks.com)가 등장했다.
또, 유출 문서의 해석과 분석의 대중 참여를 조직하거나 위키유출의 실험을 체험하고 연습(!)하는 방법으로 “외교전문 파문” 게임(Cablegate, the Game), “유출되는 세계” 비디오 게임(Leaky World), “위키유출: 게임”(WikiLeaks: The Game) 등이 만들어졌다. 주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여러 위키유출 노래도 불려졌다. 말 그대로 랩으로 뉴스를 전하는 호주 미디어 문화 활동가들의 ‘랩뉴스’(Rap News)는 그 네번째 편(위키유출 대 국방성 – 인터넷 WWW전쟁)과 다섯번째 편(신세계질서 – 저널리즘 전쟁: 줄리앙 어사쥐 출연)에서 위키유출을 다루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위키유출의 내부고발 – 정보유출 – 폭로의 장르를 또 다른 장르와 접목해 변형시키면서 위키유출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을 다르게 지각하고 인식하는 참여적 경험을 제공하는 또 다른 변이들이다.

검열로 이어진 기업 소유의 도메인이름서버(DNS)나 웹 서버에 대한 더 나아간 대응을 위해서라면, 피투피 파일공유에 대한 탄압과 검열에 맞서기 위해 ‘닷-피투피 프로젝트’(The Dot-P2P Project)와 같은 대안적 도메인이름시스템(DNS)이 이미 개발 중에 있고, 웹호스팅하는 서버와 이를 이용해 구축한 웹사이트 사이에 암호화된 계층을 삽입해 어떤 것이 호스팅되고 있는지 모르도록 만드는 ‘언호스티드’(unhosted)라는 프로그램이 초기 개발돼 있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거대 금융 기업들이 통제하는 신용 거래나 온라인결제를 대체해서 ‘플래터’(Flattr)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이용한 후원과 소액결제 방식이 활용되었고, 더 나아가 탈중심화된 인터넷 화폐를 실험하고 있는 ‘비트코인’(BitCoin) 같은 기왕의 프로젝트가 대안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들은 물론 위키유출에 대한 탄압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상당히 진척된 인터넷의 사유화와 검열 통제에 맞서서 여기저기서 시작된 것들이다. 따라서 이번 위키유출 사태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여러 움직임들을 ‘대안 인터넷’ 운동으로 결집시키는 하나의 계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관련 글:

게임화 – 재미이론

삶은 게임! 장난이 아니네…에서 볼 수 있는 게임화(gamification)의 또 하나의 사례로서,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이 소비자(이용자)의 아이디어를 모아 혁신을 추구한다며 열어놓고 있는 웹사이트가 ‘재미이론’이다:

thefuntheory.com 경유: gamepocalypsenow.blogspot.com

말하자면,

재미의 요소를 가미해서 일상생활을 변화시키자는 것인데 그 첫 번째 공모 수상작은 “과속방지 카메라 복권”(The Speed Camera Lottery)이다.

즉, 규정속도를 위반한 차에 대해 벌금 딱지를 떼게 하는 대신, 규정속도를 잘 지킨 차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복권 당첨을 시키는 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 돈은 벌금으로 충당하면서.

그리고 폭스바겐은 이것을 스웨덴의 스톡홀롬에서 실제로 설치해 운영해보았다고.

삶은 게임! 장난이 아니네…에서도 언급했지만,

(저 재미이론 사이트의) 이런 아이디어를 한 두 개 보면 기발하지만 계속 보다보면 정말 살 맛 떨어지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끔찍하다.

관련 글:

삶은 게임! 장난이 아니네…

출처: 인권오름  232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0년 12월 21일 (http://hr-oreum.net/article.php?id=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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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게임! 장난이 아니네…

이 천 년대도 어느덧 10년대로 접어들 즈음. 한국정보산업연합회라는 곳에서 국내 크고 작은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의견을 물어 조사했더니 2011년 정보기술 산업의 핵심 용어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꼽고 ‘클라우드 컴퓨팅’과 ‘소셜 네트워크’를 그 다음으로 꼽았다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새로나온 디지털 신상품이나 인터넷의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웹사이트의 유행처럼 지나가는 게 아니라 우리네 일상생활의 문화 전반을 뒤덮을 기세다. ‘집단지성의 놀이와 노동’의 차원에서 볼 때 이 세 가지와 더불어 당분간 극성을 부릴 또 하나를 더 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게임화(gamification)일 것이다.

게임화

게임화는 한마디로 게임의 요소를 상품 판촉(마케팅)에 적용한 것을 말한다. 이 말이 처음 나온 곳도 게임 디자이너들과 손잡은 마케팅 업계다(주로 미국 얘기다, 아직은). 여기서 말하는 게임의 요소는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마치 게임하듯이 재밌고 호승심을 유발해 쟁탈하듯이 만들거나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더욱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게 만든다. 게임화를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돈벌이 하려는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마케팅 기업)은 이제 게임의 논리와 코드를 활용해 소비자의 감정, 동기, 행위 패턴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소비자들이 게임에 빠져들듯이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몰입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화는 이미 존재하는 여러 마케팅 기법을 한데 모아보니 게임과 비슷하여 그것들을 묶어 이름붙인 것이라해도 틀리지 않는다. 다만, 최근의 상품 및 서비스 마케팅의 경향(트렌드)에 게임의 요소가 상당히 두드러지고 있고, 우리의 일상문화에 슬며시 그러나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런 경제문화 혹은 문화경제적 논리가 걱정된다.

게임화의 양상을 몇 가지 살펴보자. 대표적인 게임화의 사례는 비행기표를 사고 숙박시설을 이용하면서 마일을 쌓는 일이다. 항공사에 혹시 회원가입이 되어 있다면, 시시때때로 오는 이메일에는 현재 적립된 마일이 얼마인데 이것저것 누릴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더 쌓아야하는지 알기 쉅게 그래프가 제시된다. 수퍼마켓에서 식료잡화를 살 때도 계산대에서 돈과 함께 포인트 적립카드 같은 것을 내미는 일이 어느새 일상화되었고, 사실 그 이전부터 중국집의 자장면 하나 배달받아도 스티커가 따라오기는 했다. 마일을 쌓고, 포인트를 적립하고, 스티커를 다 붙이면 뭔가 보너스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적절한 보상의 제공은 게임화의 기본이다. 보너스 혜택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순위가 높아지거나 그게 아니라도 뭔가 성취감을 주는 게 있다면 뭔가를 더 하고 싶어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전적 보상만큼 동기부여가 심하게 된다고 믿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포인트, 마일, 뱃지, 트로피, 도전, 사이버머니 등과 같은 보상 기제가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다. 신용카드사나 은행, 호텔, 항공, 자동차, 통신사, 온라인 포털 등이 연계하면서 거리에서든 인터넷에서든, 현실세계에서든 온라인게임과 같은 가상세계에서든 안 가리고 쓸 수 있게 되고 있다. 그에 더해 내가 얻은 포인트 점수, 올라선 숙련의 단계 같은 것들이 계속 통계 처리되어 알기 쉬운 막대 그래프로 늘상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기분 좋을 것 같다.

게임화와 소셜 네트워크

이런 게임화 기제가 보다 잘 적용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최신 네트워크문화의 도구들을 통해서다. 우선, 우리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상생활에 ‘소셜 네트워크’가 기생하며 퍼져갔다면 게임화는 그 ‘소셜 네트워크’에 기생하며 확산되고 있다. 단적으로 “오늘밤 12시에 무엇이 반값이 될까”라는 광고 문구가 서울 시내버스 옆구리에까지 나붙었는데, 이는 어느 한 ‘소셜커머스’ 업체가 소비자를 꼬이려는 말이다. 이 웹사이트에 가면 고급음식점이나 술집, 이미용 서비스, 공연행사 등을 하루에 하나씩 하루밤 사이에 100명 등으로 정해진 사람이 모두 결제하면 5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반값으로 살 수 있는 대신 정해진 사람수를 우리가 채워주는 수고를 해야하는데 그 때 바로 ‘소셜 네트워크’를 타고 우리의 친구들이 동원되는 식이다. 먹고 마시고 꾸미고 보고 즐기는 생활문화의 소비가 경매 혹은 게임하듯 이루어진다. 해외에서도 유사하게 ‘그루폰’(groupon)이나 ‘리빙소셜’(LivingSocial)이 있는데 그 이름이 암시하듯, 이제 개별적이었던 소비생활을 친구를 동원해서 ‘소셜’하게 하도록 유도된다.

이렇게 게임화가 소셜 네트워크와 결합하는 방식을 크게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공간은 사람들의 실시간 위치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리고 시간은 소비 선택을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먼저, 게임화가 스마트폰과 결합되면 우리의 일상적인 이동과 자주 가는 장소에 대한 게임이 펼쳐진다. 국내에는 아직 유사한 것이 없는 모양인데 ‘포스퀘어’(foursquare)라는 소위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는 이 것(앱)을 설치한 스마트폰으로 특정한 장소에 가서 ‘나 지금 여기 있다’고 등록(check-in)하면 된다. 특정한 곳에서 가장 많이 등록을 한 사람이 그 곳의 ‘시장’(mayor)이 되었다고 표시된다. 그러니 시장 자리를 뺏으려면 더 많이 체크인하면 된다. 그 전에라도 등록하는 족족 포인트를 받는다. 내 점수는 다른 사람들과의 순위를 매기는데 사용되고 순위가 낮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등록을 많이 하면 된다. 식당이나 극장이나 어디든 그 곳에 대한 정보를 올리면서 말이다. 그러면 열심히 했다고 다양한 뱃지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하고 예쁜 뱃지 얻는 재미로 역시 등록을 계속 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 ‘포스퀘어’(foursquare) 말고도 ‘페이스북 장소’(Facebook Places), ‘에쓰씨브이엔쥐알’(SCVNGR), ‘고왈라’(Gowalla) 같은 것이 있다.

반면, 시간에 대한 게임화 적용의 한 방식은 구매할 기회를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만들어서 소비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자정 때 반값으로 공동 할인 구매하는 곳의 경우가 그렇다. 십 만원에 육박하는 드라마 촬영장소였던 식당의 식사권을 반값에 살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오늘밤까지다.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머릿수 채워 반값에 구매하는 것이 무슨 게임같아 재밌고 어차피 먹고 마시고 즐기고 할텐데 반값이라니, (어느 한 홍보성 블로그 글의 표현대로) “하루에 한번이라도 안 보면 괜히 손해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뭔가 돈을 쓰면서도 돈을 절약하거나 심지어 돈을 버는 것 같다. 지금 안 사면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찬스가 매일밤마다 희소하게 제공되는 셈이다. 어차피 살 것이었는지 굳이 필요없었던 것인지 애매하지만 말이다. 외국에서는 보석 같은 고급 치장물이나 고가 제품을 취급하는 ‘길트 집단’(Gilt Groupe) 같은 곳이 이렇게 희소한 할인 기회를 만들어 소비를 유발하는 이런 게임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는 게 장난이 아니네…

‘소셜’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이 직접 얼굴보며 만나거나 전화로 유지되기 힘들었던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 등과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 맺으며 발전시킬 수 있게 돕는 도구(소셜 미디어, 스마트폰)를 통해서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고 있듯이, 게임화 역시 그런 식으로 문화(산업), 미디어, 건강, 의료, 교육, 환경 등 가능한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이를테면, 건강 차원에서 다이어트나 체력 관리를 위한 게임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동시에 게임화의 방식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게임화 전문가가 말한 예를 들자면, 내 신발에 센서가 달려있어서 하루동안 걸어다닌 거리가 자동으로 원격 측정되어 그에 따라 나는 포인트를 받게 되는데 그 정보가 보험회사로 들어가 보험료의 일부가 자동 납부될 수도 있고, 나의 체력관리 노력이 어느 정도 이르면 물론 광고회사로도 전송되어 체육용품에 대한 할인쿠폰을 우송받을 수도 있다. 친환경, 녹색성장, 저탄소, 대체에너지 이용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도 이런 식으로 갈 수 있고, 교육도 (입시)지옥이 아니라 게임처럼 재밌게 만들자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

건강도 교육도 환경 보존도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한결같이 즐겁게 할 수 있다니, 세상 참 재밌고 살 만해지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죄다 소비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앞서 언급한 여러 사례들을 한 개 두 개 찾다보면 기발하다 생각되기도 하지만 계속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주눅들고 곤혹스러운 느낌이 절로 생긴다. 한 두 번의 재미가 반복적인 일이 된다면, 그래서 놀이가 노동이 된다면, 노동 과정에서도 벅찬데 사는 것 자체가 무슨 조종을 받으며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보상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임화의 설정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충성 고객의 지속가능한 소비를 만들기 위한 투자라는 차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강화를 위한 기제일 뿐 진정한 보상이나 혜택이 아니다. 우리의 자발성이 (이윤창출을 위해) 언제나 쉽게 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점점 이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되면, 그런 금전적인 동기나 유인(인센티브) 없이도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어왔던 우리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점점 내좇기고 무슨 다중 역할수행 게임 속 캐릭터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

게임화의 목적은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과정이나 노동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을 지가 좋아서 하는 일로 만드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던 게 재미가 없어지고 노는 게 노는 게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어느때부턴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에 “장난이 아니네…”는 바로 그런 현실 변화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담고 있다 하겠다.

참고한 것

  • 2011년 IT산업 키워드는 스마트, 클라우드, 소셜,” 전자신문, 2010.12.8
  • 5 Predictions for Game Mechanics in 2011“(2011년 게임 메커닉스를 위한 5가지 예측), Gabe Zichermann, mashable.com, 2010.12.17
  • Gamepocalypse Now(블로그), Jesse Schell
  • The Gamification of Everything?“(모든 것의 게임화?), Margaret Wallace, Gaming Business Review, 2010.12.14
  • 관련 글:

    페이스북, 좋아요(like)? 싫어요(dislike)!

    타임(Time)지의 올해의 인물로 페이스북의 창업자(Mark Zuckerberg)가 선정된 것을 기념해

    자유소프트웨어재단에서 “싫어요”(dislike) 버튼 캠페인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like) 버튼이 하는 기능을 보자. 저 페이지에서 링크해놓은 한 논문(Facebook Tracks and Traces Everyone: Like This!)에 따르면, “[이 버튼이 설치된] 웹사이트에 방문했을 때 이용자가 실제로 그 버튼을 사용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 도구는 이용자의 컴퓨터에 쿠키를 심어놓는데 사용된다. … 이를 통해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을 사용하지도 않는] 이용자들[까지] 추적하여 그들의 [웹 활동] 데이터를 모아 분석할 수 있다.”(the tool is also used to place cookies on the user’s computer, regardless whether a user actually uses the button when visiting a website. As an alternative business model this allows Facebook to track and trace users and to process their data.)

    그리고는 (미국) 정부 정보기관이나 광고회사에 넘기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사용을 중단하는 사이버자살도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페이스북 같은 이용자감시를 사업모델로 하는 웹2.0 사이트들은 그것이 인터넷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캠페인 페이지에 가보면 아래의 버튼이 좀 더 작은 것들로 더 있다. 스티커로도 인쇄해 사용할 수 있다.

    • Dislike
    • Not f'd — you won't find us on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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