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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에서 인터넷 전쟁

출처:  “아랍 혁명에서 인터넷 전쟁,” 진보넷 – 정보운동 ActOn 12호, 2011.봄.

아랍 혁명에서 인터넷 전쟁

0. 인터넷 ‘셧다운,’ 혹은 국가의 인터넷 서비스 거부 공격

이집트에서 2011년 1월 28일부터 2월 2일까지 인터넷이 전면 차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실 이집트 정부는 인터넷이 반정부 투쟁이 조직되는 주요한 현장이 되기 시작한 2005년 이전부터 이미 인터넷을 통제해왔고, 페이스북에서 반체제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소셜 미디어에 대한 감시와 검열을 지속해왔다.1 하지만 1월 25일 “분노의 날”(Jan25) 시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혁명적 봉기로 발전되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들고일어나자 감당을 못하고 인터넷의 작동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이다. 국가권력이 감행한 대대적인 인터넷 서비스 거부 공격(DOS)이라고 할 만하다.

“분노의 날”(Jan25) 시위가 있던 1월 25일부터 이미 트위터에 대한 차단이 있었다. 정부는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지만, 트위터 공식 트위터에는 교통량(트래픽)이 현저히 감소됐다는 보고가 올라왔다.2 그에 이어 26일에는 구글과 페이스북 접속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28일 “분노의 금요일”의 전날 밤에 급기야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전면 서비스 거부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시간으로 27일 밤 10시 반을 넘으면서 인터넷 교통(트래픽)의 93%가 차단된 것이다.3

출처: renesys.com

출처: renesys.com

인터넷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를 위한 이동통신망 역시 차단되었다. 영국 기업으로 이집트 정부가 36%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보다폰 이집트(Vodafone Egypt)는 이집트의 모든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지역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도록 요구받았고 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프랑스 텔레콤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모비니(Mobinil) 역시 마찬가지였다.4 그에 더해 1월 31일 아랍 전역에서 알자지라 방송 신호에 대한 최악의 전파 방해가 있었고,5 이후로도 계속 전파 방해가 있다는 공지가 알자지라의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다.

이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인터넷 전면 폐쇄 사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2월 네팔은 왕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나라 전체에 국제적 인터넷 연결을 절단시킨 적이 있었고, 2007년 9월 29일 버마의 독재정권은 사프론 혁명(Saffron Revolution) 동안 정부가 시위대에 가한 폭력적 탄압을 시민들이 기록해 올린 사진과 비디오의 흐름을 막기 위해 인터넷 연결을 전체적으로 폐쇄시킨 바 있다.6 또 이란의 경우, 1천만 개의 웹사이트가 정치·사회적으로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접근 금지되어왔는데 2009년 반정부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을 때 정부는 시위대 관련 웹사이트와 해외 언론 웹사이트를 차단시키며 온라인 감시를 강화했고, 데이터 전송율을 80%까지 떨어뜨리면서 거의 폐쇄와 다름없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인터넷만이 아니라 이동통신망의 경우도 이란과 중국에서 부분적으로 텔레콤을 폐쇄한 적이 있었다.7

‘막으면 돌아가고’: 풀뿌리 네트워크 기술

인터넷 전면 폐쇄는 핵 공격의 위기 상황에서도 취하지 않을 극단적인 조치지만, 체제가 무너지게 생긴 권력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외 여론을 잠재우면서 반정부 시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감행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그 반대였다. 시위는 계속되고 도리어 더욱 확산되었다.8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온 사람들조차 이제 거리로 나가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9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없던 시절부터 사회운동의 조직화와 대중동원에 필수적인 전통적인 풀뿌리 미디어의 활용이 더욱 두드러졌다. 시위대가 점유한 광장,10 거리의 낙서, 손팻말, 전단지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전단지는 그렇지 않아도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터넷 접근이 차단돼온 카이로의 저소득 계층 지역에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를 알리는데 가장 적절한 매체로 기능했다.11 시위 전술을 담은 유인물은 정보기관의 감시에 취약한 소셜 미디어보다는 이메일이나 복사와 직접 전달을 통해서 (재)배포되었다.12

점차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면서 그에 대항하는 시도가 여러가지로 나타났다. 우선, “분노의 날” 시위가 있었던 1월 25일부터 트위터가 차단되고 이어 페이스북과 구글 등이 차단될 때 이집트 내의 사람들이 이를 우회하여 접근할 수 있도록 지구적으로 분산된 프록시 서버(Global Proxy Cloud), 무료/자유 가상 사설망 서버(FREE VPN Server), 토르(Tor)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익명의 인터넷 연결 기술인 토르(Tor)의 이용자가 급증했다.13 또,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선 인터넷 연결이 차단되었을 때, 광장 인근에 살거나 사무실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선 인터넷 공유기(wifi routers)의 비밀번호를 제거해 광장의 시위대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했다.14 그리고 휴대전화기를 모뎀으로 활용해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했다.15

출처: the Tor blog

보다 안전하게 모바일 기기를 활용하려는 장치도 마련되었다. 시위 참가자가 감청과 위치추적을 당하지 않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폰의 앱(안드로이드 기반)이 개발되어 보급되었다. 암호화와 사설 프록시 서버를 이용해 모바일 통신의 보안을 제공하는 ‘붉은전화’(RedPhone)와 ‘문자보안’(TextSecure)이 그것이다.16 더 나아가 이용자가 감시당하는 위험 없이 안전하게 트위터를 활용할 수 있는 대안적 트위터를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그 이름이 또한 ‘타흐리르’(Tahrir, 해방)다.

인터넷이 전면 폐쇄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자 인터넷(하부구조)을 대체할 수 있는 풀뿌리 기술이 총동원되었다.17 인터넷과 이동통신이 폐쇄되었지만 유선전화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텔레코믹스(Telecomix and We Rebuild) 등의 기술 활동가들은 먼지 쌓인 전화연결 모뎀을 다시 꺼내 1980~90년대 그랬듯이 전화선을 통해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18 웹 이전의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인 사설 전자게시판(BBS) 역시 재활용되었다. 또, 팩스가 끊어진 채널을 대체하는데 이용되었다. 텔레코믹스는 인터넷과 연결되는 팩스(Telefax), 즉 ‘팩스-웹 연결’(fax-to-web bridge)를 제공했는데, 이집트로부터 팩스를 받아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신자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삭제하고 그 내용을 웹사이트에 올리거나 발신자의 요청에 따라 원하는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기능을 가졌다.19 이와 다르게 해킹행동주의 네트워크인 ‘무명씨’(Anonymous)는 정부의 부패상과 인권 침해의 심각한 현실을 알리고 퍼뜨리기 위해 위키유출에서 공개된 미국 외교전신(cables) 중에서 무바락 정권과 관련된 문서를 반복해서 팩스 전송했다.20 이것들 보다 더 오래된 기술도 활용되었는데, 아마추어 무선통신 혹은 햄 라디오(ham radio)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햄 이용자는 면허증을 얻는데 정치적 인맥이 필요한 이집트 상황에서 시위에 반대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21 사실, 전화연결 모뎀이나 팩스, 햄 라디오의 활용이 성공적으로 인터넷 연결을 대신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지배적인 네트워크 기술에 대한 풀뿌리 대안의 가능성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지 잘 보여준 것이다.

네트워크 연결 중에서도 현장의 속보를 신속하게 공유하기 위한 대안적인 트위터 방식에 호응이 컸다. 먼저 미국의 한 대학원생은 이집트에서 소셜 미디어가 차단되자 그의 이집트 친구들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최신 정보를 계속 트위터 계정 ‘@Jan25voices’에 올리고, 휴대전화가 끊기자 유선전화로 지속했다. 그의 트윗은 “현지 전화( Live Phonecall)에 따르면: …”하는 식으로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전문 기자들도 현장에서 보도하기 힘들었을 때 그는 실시간 현지 정보를 제공했다.22 흥미롭고 문제적인 또 하나의 실험은 구글이 나선 일이었다. 구글은 이전같으면 해킹 활동가나 기술운동집단이 했을 사회적 대안 기술 개발에 직접 뛰어들었다. 마침 지난 1월 25일 구글은 전화에 소셜 미디어를 연결하는 서비스인 ‘지금말하세요’(SayNow)를 인수했는데, 이집트에서 인터넷이 폐쇄되자 전화로 트윗을 하는데 이를 활용했다. ‘말로트윗하기’(speak2tweet)가 그것인데, 이집트에서 전화를 통해 음성 메시지를 보내면 ‘지금말하세요’ 사이트에 문자 메시지로 올라가고, 그 메시지에 대한 링크가 자동으로 트위터 피드(@speak2tweet)로 트윗된다. 그 음성이나 문자 메시지에 대한 번역은 군중외주의(crowdsourced) 번역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자원한 사람들이 구글 문서의 번역 페이지에 들어가 번역한 후에 ‘이집트 얼라이브’(Alive in Egypt)에 올리는 식이었다.23 이는 인터넷 연결이 없이도 트윗 – 즉, 실시간 단문 속보의 전달과 공유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인터넷이 복귀되기 시작한 2월 2일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널리 이용되었다.

또, 위성방송과 트위터가 결합된 형태도 있었다. 카이로의 한 미디어 연구자가 언급하고 있는 알자지라의 위성뉴스를 통한 트윗 방송(Satellite News Broadcast of Tweets)이다.24 이는 트위터를 통해 이집트 시위 현장의 정보가 외부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외부에서 현장으로 정보가 되먹임(feedback)되어야 하는데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외부의 정보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알자지라는 이렇게 현장의 활동가와 시민에게 시위 전술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더해 구글의 ‘말로트윗하기’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긴급 전화 번호를 계속 공지해주었다. 이렇게 전화와 트윗, 위성과 트윗이 결합되는 것과 다르게, 위성-라디오-입소문의 결합도 있었다. 아라비아 위성뉴스는 그 방송 내용을 라디오로도 내보내면서 그 도달 범위를 확장했는데, 그 연구자의 조사에 따르면, 라디오를 통해 위성뉴스가 방송되면서 차에서 이를 듵은 운전자들이 차가 막힐 때 새로운 정보를 보행자들과 공유하고 그들은 다시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인맥)을 통해 정보를 퍼뜨렸다. 이와 같이 인터넷이 차단되자 그 전까지 서로 연계되지 않았던 네트워크 간의 행동가능한(actionable) 정보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25

풀뿌리 기술 저항의 역동(패턴)

인터넷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진 이집트의 사례는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공동체 미디어가 어떻게 기존의 미디어 및 정보기술을 재결합시키면서 그에 대항하고 대안을 구성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보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핵심 요소가 된다. 반정부 시위대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시위대 내부(해방광장 혹은 이집트 전역)에서 활발하게 오가는 정보가 있고, 대항해야할 정부가 생산하고 퍼뜨리는 반-정보가 있고, 외부의 국제연대 세력을 포함해 국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정보가 또한 들락날락 해야한다. 즉, 내부에서 소통되는 정보와 반-정보가 있고, 내외부에 걸친 정보로서 내부로 들어가야하는 것과 외부로 나가야 하는 정보가 있다. 그리고 정보는 신속하게 실시간으로 전달돼서 당장의 시위 전술을 구상하고 행동에 옮기기 위한 것이 있고,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전지구적인 범위까지 맞물려 돌아가는 사건의 연쇄와 흐름을 분석하고 판단하여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정보가 있다. 행동을 위한 정보는 최대한 실시간에 가깝게 유통될 필요가 있고, 숙고를 위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지연되는 느린 속도를 갖지만 입체적인 관점을 담아야 한다. 이런 속보와 분석의 정보 모두가 잘 유통되기 위해서 내외부의 정보 유통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볼 때, 인터넷은 시위대 내부에서(혹은 활동가와 시민 대중 간)의 쌍방향 소통을 위해서도 중요한 매개였지만 이집트의 억압적 체제를 고려하면, 특히 정부의 인터넷 폐쇄가 국제여론과 국제연대로부터 반정부 시위대를 고립시키기 위한 조치였음을 상기해 볼 때 내외부의 소통에 더욱 결정적인 채널이었다. 그래서 앞서 보았듯이 인터넷이 끊겼을 때 인터넷과 같은 내외부의 소통을 지속하기 위해 등장한 것들이 유독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위성-트윗 같은 경우는 외부에서 내부로 실시간으로 들어가는 정보를 위한 채널의 복원이었고, 인터넷 대신 전화를 이용한 ‘말로트윗하기’ 역시 실시간으로 신속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위성-트윗과 반대로 이것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것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연결 모뎀이나 팩스 역시 국제적인 정보의 유통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인터넷의 폐쇄에 맞선 시위대의 정보 미디어 행동주의는 내부에서, 그리고 특히 내외부 간의 정보 흐름을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한 작업으로 종합될 수 있다. 반정부 시위의 역동적인 전개는 내부와 내외부모두에서 정보의 상호작용의 흐름이 얼마나 활발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보 미디어 행동주의는 상당히 결정적인 운동의 양상이 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전통적 풀뿌리 미디어를 비롯해 전화, 팩스, 무선통신, 라디오, 위성TV 등이 총동원되었고, 그 활용 방식도 평상시라면 잘 보기 힘든 것이었는데, 낡은 기술과 최신 기술이 결합되었고 기존의 방송 미디어(위성TV, 라디오 등)와 네트워크 기반의 소셜 미디어(트위터 등)이 결합되었다. 단적인 예로, 트위터는 실시간의 속보성 정보가 내부에서 그리고 내외부를 연결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졌고, 인터넷이 차단되자 무엇보다도 이 소통 형식을 지속시키기 위해 (국제)전화, 위성TV, 라디오 등이 그 형식과 결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두드러져보인다고 이를 두고 지배 언론은 ‘트위터 혁명’으로 명명했지만,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요동치는 전체 정보 미디어 환경의 재구성 속에서 벌어진 한 양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동이 정부의 인터넷 폐쇄에 맞서는 정보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위대는 정부가 생산하고 퍼뜨리는 정보에 대항할 필요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 오히려 (반-)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공세적 접근도 있었다. 인터넷 폐쇄 조치 자체가 그렇지만 정보경찰이 계정을 탈취한다거나 하는 해킹 공격이나 전파 방해가 시위대의 정보 흐름을 끊는 시도였고 이에 맞서 이루어진 무명씨의 정부 웹사이트나 이동통신 기업들에 대한 해킹 공격에서 볼 수 있듯이, 시위대 또한 정보의 흐름을 위한 대안적 채널을 새롭게 구성해낸 것뿐만 아니라 특정 정보의 흐름을 차단하는 전술을 함께 사용하였다.

다른 인터넷은 가능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우선, 소셜 미디어를 다시 받아들이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문화에 파고 들어온 소셜 미디어는 꼭 현재와 같이 기업이 지배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구글일 필요가 없고, 심지어 인터넷일 필요도 없다. 이 새삼스러운 사실은 이번 격변 속에서 인터넷 폐쇄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전개되자 그 소셜 미디어가 기반을 두고 있던 공동체의 유기적인 사회(관계) 구조가 표면에 부상하며 가시화되었다.26 한 연구자는 이번 경험이 사람들이 연결성에 대해 갖는 자신의 권리(entitlement)를 지각하는 방식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했다고 하면서 소셜 미디어는 특정한 기술을 넘어서는 진정한 변화를 구성했다는 것이다.27 즉, 우리는 이번 아랍 혁명의 과정에서 페이스북 혁명이나 트위터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소셜 미디어가 사회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 어느 정도인지, 인과적인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런 사회정치적 변화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혁명적 사회변화 과정에 함께 맞물리며 어떻게 보다 진보적으로 변형될 수 있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질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터넷의 속성 자체가 초국적 네트워크이듯이 이집트에서 인터넷이 전면 폐쇄되는 사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항한 조직적 움직임 역시 국제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일 역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국제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적인 예로, 아랍의 한 해커는 지난 6년간 지역의 활동가, 기자, 인권 변호사에게 암호화, 이메일에서의 보안(PGP), 토르 이용과 같은 풀뿌리 해킹 기술을 통해 인터넷에서 감시와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교육해왔다. 그는 또 사회운동가나 인권활동가의 보안, 프라이버시, 익명을 위한 자유소프트웨어 도구 모음 책자인 ‘보안 상자’(Security In A Box)의 아랍어 편집본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28 2009년 이란의 반정부 시위 때도 해외의 해커와 기술 활동가들이 억압적 정부가 인터넷의 접근을 제약하는 것을 우회하는데도 국제적인 지원을 시도했다.29 이집트에 인터넷 차단을 우회하는 프록시 서버를 제공한 ‘접근’(Access) 같은 국제적 기술운동 집단 역시 이란에서의 투쟁 경험을 통해 조직된 것이다. 또한 튀니지와 이집트의 활동가들은 리비아의 반체제 시위대를 지원했는데, 단적으로 벵가지 등 해방된 리비아의 동부 도시들에 인접한 이집트에서 국경을 통해 구호물자를 조달하기도 하고, 리비아에서도 인터넷이 폐쇄되자 현장에서 생산된 미디어를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대신했다.30 이와 같이, 국제연대는 인터넷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인터넷을 위해서도 중요한 요소였다.

민중 봉기가 그랬듯이 정부의 인터넷 폐쇄 조치 역시 이집트와 여러 곳들로 도미노처럼 퍼져갔다. 하지만 이는 이번 아랍 혁명 시기 동안에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인터넷 탄압 사례가 아니다. 반정부 시위가 터져나오거나 정보의 사유화와 상품화를 위반하는 정보의 자유 흐름이 거센 거의 모든 곳들에서 일시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인터넷 폐쇄가 이루어지고 있다.31 그래서 애초 인터넷이 핵공격에도 안전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기획되었던 것처럼 이제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국가와 이윤창출을 위해 인터넷을 사유화하고 거듭 통제하려는 기업에 맞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인터넷, 말하자면 ‘대안 인터넷’이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될 때가 되었다.

1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조동원, 인권오름  240호 나들터, 2011.3.2.

2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internet.artizans, 20112.10.

3Egypt’s Internet Blackout: Extreme Example of Just-in-time Blocking,” Masashi Crete-Nishihata & Jillian C. York, OpenNet Initiative, 2011.1.28. 이 때 누어(Noor Group) 인터넷 제공업자(ISP) 회선은 차단되지 않았는데, 그 고객 명단에 이집트 증권거래소(Egyptian Stock Exchange), 이집트 상업 국제은행, 이집트 중앙은행, 이집트 신용평가국(I-Score), 이집트 항공 등 금융 정보 네트워크의 핵심 기관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31일 저녁에 차단되었다(“Egypt’s Net on Life Support,” Renesys Blog, 2011.1.31).

4The Role of Multinationals in Egypt’s Communication Shutdown,” Business Ethics, 2011.2.2.

5Egypt’s uprising: different media ensembles at different stages,” John Postill, media/anthropology, 2011.2.10.

6Egypt’s Internet Blackout: Extreme Example of Just-in-time Blocking

7Digital Media and Iran’s Green Movement: A Look Back with Cameran Ashraf,” The Hub(hub.witness.org), 2009.12.15.

8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Alix Dunn, meta-activism project, 2011.2.13.

9Egyptians Were Unplugged, and Uncowed,” NYTimes.com, 2011.2. 20.

10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해방 광장이라는 뜻)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공간적 매체였는데, 단적으로 다국적 즉석 음식점(KFC)은 시위대가 접수해 간이 병원으로 사용되었고, 아이를 가진 여성들의 시위 참여를 돕기 위해 광장 한 켠에 유치원이 마련되기도 했다. “Egypt: The camp that toppled a president,” BBC News, 2011.2.11.

11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매체는 아마도, 무바락이 사퇴하기 이틀 전까지 오락 프로를 방영하거나 반정부 시위에 대한 흑색선전을 일삼은 국영TV라고 할 수 있는데, 시위대는 반정부 시위의 정당성과 인민의 집단적 요구를 알리는 전단지를 이들 지역에도 널리 유포했고, 실제로 25일의 시위에 이들 지역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했다(“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12Egypt’s uprising: different media ensembles at different stages”; “Egyptian Activists’ Action Plan: Translated,” The Atlantic, 2011.1,27. 시위 전술 전단지의 한글 번역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이집트 시위 현장에 뿌려진 시위 전술 유인물,” The Dispossessed, 2011.2.3.

13Recent events in Egypt,” The Tor Blog, 2011.1.29. 토르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참여를 통한 지구적 연대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토르의 계주와 다리(Tor relays and bridges)를 내려받아 자기 컴퓨터에 운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터넷 검열을 피해 익명의 네트워크 접속의 가능성이 커진다.

14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15Without Internet, Egyptians find new ways to get online,” Computerworld, 2011.1.28.

16Free Android encryption comes to Egypt,” The Register, 2011.2.10.

17보다 자세한 내용은http://werebuild.eu/wiki/Egypt/Main_Page 그리고 http://www.movements.org 참조.

18Low-Tech and the revolution or: How a video of an egyptian girl forced us into technology of the 90s,” We Rebuild Interfax, 2011.2.2.

19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20Amid Digital Blackout, Anonymous Mass-Faxes WikiLeaks Cables To Egypt,” Forbes, 2011.1.28.

21Ham radio not a viable option for Egypt,” PC World Australia, 2011.2.1.

22Without Internet, Egyptians find new ways to get online”; “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23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Egypt’s uprising: different media ensembles at different stages

24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25How the Internet Kill Switch Didn’t Kill Egypt’s Protests

26The Religious Element of Egypt’s Secular Revolution,” Alix Dunn, meta-activism project, 2011.2.15.

27New Social Networks With Old Technology – What The Egyptian Shutdown Tells Us About Social Media

28New Video: Cairo Geeks Survive Tahrir Square Assault,” Wired.com, 2011.2.2.

29Digital Media and Iran’s Green Movement: A Look Back with Cameran Ashraf

30Libya’s revolution headquarters,” Al Jazeera English, 2011.2.27.

31가장 최근의 극적인 사례는 2010년 12월에 있었던 위키유출(Wikileaks)에 대한 미 정부와 아마존, 금융 기업들의 그 웹사이트 차단과 서비스 거부였다. 이 때도 대안 인터넷을 위한 국제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다. “수많은 위키유출(Wikileaks)들과 ‘대안 인터넷’,” 조동원, 인권오름  236호 나들터, 2011.1.26.

관련 글: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출처: 인권오름  240호 나들터 [집단지성의 노동과 놀이], 2011년 3월 2일 (http://hr-oreum.net/article.php?id=1697)

아랍 혁명과 페이스북 ‘반’혁명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전역으로 번진 아랍의 사회 변혁운동이 처음에 튀니지에서 퍼져나오고 이집트로 확산되는 것처럼 보일 때, 지배 언론은 이를 “재스민 혁명” 말고도 “페이스북 혁명,” “트위터 혁명,” “위키리크스 혁명”으로 불렀다. 물론 사회운동 조직과 활동가들이 독재체제 하의 억압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해외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시위 조직화와 대중동원을 이뤄낸 것이 사실이다(jadaliyya). 하지만 “페이스북 혁명”의 이면에는 페이스북 ‘반’혁명이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이른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사회운동에 도움이 된 것 이상으로 지배 권력이 봉기와 혁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인민을 감시하는데 써먹고 있는 도구다.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정권의 감시 사업에 이용되고 있는지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페이스북의 실명제

소셜 미디어의 등장,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친한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인터넷에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하는 네트워크 문화의 형성은 감시기술사 차원에서 볼 때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이들의 개인 신상과 그 인맥을 곧바로 추적할 수 있게 자발성과 자동성이 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명으로 말이다. 페이스북은 온라인 사기와 같은 사이버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이용자 보호를 기한다는 명목으로 이용자에게 실명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nytimes). 대한민국처럼 주민번호라는 편리한 통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회원가입 때부터 이를 강제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가명을 쓰고 있는 것이 발각될 때 그 서비스약관(facebook)에 따라 계정이 삭제된다. 실제 그런 일들이 있어왔고(jilliancyork), 최근 아랍의 사회운동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졌다.

아랍 전역에 걸친 혁명의 첫 포문을 연 튀니지에서 맨처음 봉기가 일어났던 도시인 시디 부지드(Sidi Bouzid)의 이름을 딴 “에스비지 뉴스”(SBZ News)라는 명칭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한 활동가는 알리(Ali)라는 가명을 써왔다. 튀니지의 악명높은 사이버경찰의 온라인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가명을 쓴다는 이유로 수 차례 그 페이지의 접속 차단 조치를 취했고 알리는 그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메일을 보냈는데, 3주 후에 날라온 답변은 그의 여권을 스캔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다(thedailybeast).

이집트의 민중 봉기가 조직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생겼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우리 모두가 카레드 사이드다”(We are all Khaled Said) 페이지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혁명적 상황으로 갈라놓은 1월 25일 “분노의 날”을 조직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곳 중의 하나였다. 사이드(Khaled Said)는 부패한 두 경찰에 대한 비디오를 블로그에 올린 것 때문에 2010년 6월 6일 경찰의 보복성 폭력을 당해 살해되었고, 이 이야기는 알 자지라 위성방송이나 다른 곳이 아니라 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퍼져나갔다. 당시 여기에 40만 명 이상의 ‘팬’들이 가입해 이집트의 지긋지긋한 독재정치, 부패, 폭력, 빈곤을 성토했고, 바로 이 온라인 공론장에서 1월 25일을 “분노의 날”로 내걸고 민주화 시위를 조직하기 시작했다(jadaliyya). 2010년 11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부가 페이스북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는 얘기들이 나돌았고,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페이스북의 이 페이지는 관리자가 가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이 접근을 차단시켰다. 당시 이 페이지의 관리자는 이후 “페이스북 혁명”에 더해 그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된 구글의 임원인 웨일 고님(Wael Ghonim)이었다. 그가 12일 간 감금됐던 것도 당시 이집트 경찰이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를 조직하는데 활용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그의 역할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nytimes). 최대한 익명을 통한 온라인 활동이 가능해야 활동가들이 신변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페이스북은 서비스약관을 어겼다면서 실명을 요구했다. 어쩔 수없이 미국에 사는 이집트 이주민 활동가(Nadine Wahab)가 새로운 관리자로 나서 자발적으로 실명을 사용한 이후에야 그 페이지가 살아났다(thedailybeast). 실명을 제공하고 관리를 맡았던 와하브(Wahab)는 페이스북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다: “페이스북이 우리의 사적 정보를 사이트에 올리라고 했으면 그것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 아닌가?”

이런 일은 이집트의 여권 지도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를 지지하는 집단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해서도 있었고 튀니지, 시리아, 모로코, 홍콩 등에서도 있었다(businessweek). 페이스북은 오랫동안 자기 브랜드로 “실제 사람들을 위한 실제 네트워크”(real network for real people)를 표방해왔는데(jilliancyork), 그러고 보면 이것은 곧 인터넷 실명제(real name system)의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튀니지의 알리(Ali)는 말했다(thedailybeast): “페이스북의 관리자들이 우리를 도와야하는 것 아닌가? … 저들은 혁명을 지원하기보다 우리의 사적인 정보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인가?” 그렇다. 곧 6억 명에 이를 전 세계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가져다가 장사하면서 축적한 페이스북의 시장가치가 무려 미화 500억 달러(약 56조 원)라고 하니 그럴만 한 것이다.

유튜브에서의 시민 (감시) 미디어

플리커나 유튜브와 같이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웹2.0 서비스 또한 사회운동 활동가나 적극적인 시민들이 널리 애용하는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이고, 이번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사회 변혁 운동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인권 침해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 시민 미디어나 유씨씨(UCC)의 확산은 시각적 재현에서의 인권 – ‘시각적 프라이버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가을 버마에서 20년이 넘는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민중 봉기가 있고 나서 정보기관이 시민이 촬영한 시위 현장 사진과 영상을 가져다가 조사해 시위자를 색출해내는 일이 있었다(witness). 또 2009년 이란에서 부정 선거 이후 번진 반정부 시위가 몇 주 동안 계속되다가 잦아들면서 경찰은 본격적으로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했는데, 소셜 미디어 덕분에 쏟아져 나온 시위자의 얼굴 사진과 비디오가 활용되었다. 예를 들어 라자(Raja) 웹사이트에서는 160명의 얼굴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85개의 사진을 올렸는데, 이는 대부분 시민이 촬영해서 유튜브 등에 올린 비디오와 사진이었다(witness). 더 나아가 경찰은 시위 현장 사진들에 나온 얼굴을 보면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일을 도와달라고 이용자들에게 요청했다. 경찰은 ‘집단지성’의 도움으로 적어도 40명을 식별하고 체포할 수 있었다(leader-values).

출처: flickr.com

정치적 표현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촬영한 동영상이 문제가 되는 일도 있었다. 이집트의 여성 활동가, 아스마 마흐푸즈(Asmaa Mahfouz)가 민주화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비디오는 유튜브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1월 25일 “분노의 날” 시위가 폭발적인 변혁운동으로 번지는데 촉매가 된 것의 또 하나로 언급된다. 하지만 정작 그 비디오를 만든 활동가는 그 영향력이 컸던만큼 무바락 체제 옹호자들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그녀는 당시 집권여당인 국민민주당(NDP) 당원들로부터 집밖으로 나오면 가족과 함께 죽을줄 알라는 살해 위협을 받은 것이다(gulfnews).

이런 사례들을 볼 때,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직접 채집하는 불법 행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표현과 행동을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많고 다양한 표현과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사진이나 영상의 행동주의 미디어 역시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할 때, 이렇게 시민 미디어가 시민 감시 미디어로 활용되는 상황에 대한 파악과 대처가 필요하다.

국가의 해킹, 소셜 (미디어) 감시

정부가 인터넷 이용자의 개인 정보나 소통 내용을 함부로 추적하고 접근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공안과 치안을 아우르는 이명박 정부의 ‘경찰국가화’”(hr-oreum)나 “시민사찰”(jinbo)을 통해 이런 문제를 익히 겪고 있는 중인데, 아랍 혁명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튀니지에서 반체제 시위가 거세지면서 다급해진 정권은 아예 시위 조직화에 활용돼온 주요 웹사이트를 위장해 이용자 계정을 탈취하는 일까지 벌였다. 경찰이 페이스북, 구글 쥐메일, 야후 메일의 가짜 로그인 화면을 이용해 이용자의 계정 정보를 빼내는 피싱(phishing)을 감행한 것이다(darknet). 앞서 보았듯이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 때문에 인권 활동가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들이 빈번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가 그나마 페이스북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페이스북을 쓰게 되는데 이 때 비밀경찰을 피해서 최대한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용해왔다(nytimes). 튀니지 경찰은 바로 이러한 반체제 운동 관련 페이지들을 운영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추적하기 위해서 페이스북의 이용자 계정을 해킹하기에 이른 것이다. 앞서 알리(Ali)의 경우 가명을 유지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온라인 활동가들은 경찰에 체포되었다(thedailybeast). 페이스북(실명제)과 억압적 정권이 만난 결과는 사회운동 활동가나 비판적 목소리를 낸 시민의 체포와 감금과 고문이었다.

경찰의 피싱이 정권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일상적으로 아랍의 독재정권들은 주로 미국에서 수입한 발전된 정보기술(IT)을 통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인터넷의 동향을 감시해왔다. 이런 격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튀니지에서는 인터넷 검열을 위해 ‘보안 컴퓨팅’(Secure Computing)이라는 맥아피(McAfee)가 인수했던(지금은 인텔이 사들인) 미국 기업이 제공한 ‘안보’ 혹은 ‘보안’ 기술을 사용해왔다(businessweek). 또한 이스라엘 기업이었다가 지금은 미국의 보잉사가 소유하고 있는 나러스(Narus)사는 이집트 텔레콤에 패킷감청 장비를 팔고 이집트 정부의 감시 활동을 도운 기업으로(savetheinternet, democracynow), 대한민국에서 지난 2010년 초에 문제가 불거졌던 ‘심층 패킷 사찰’(Deep Packet Inspection, DPI) 장비를 케이티(KT)에 판 곳이기도 하다(narus; jinbo). 패킷감청은 인터넷에 흐르는 내용을 걸러내기 위한(content-filtering) 기술로서 네트워크 관리자는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이용자가 이용하는 특정한 내용이 라우터를 통과할 때 검사하고 추적할 수 있다(techliberation).

뿐만 아니라 나러스는 소셜 미디어의 이용자를 추적하는 기술도 개발해왔다. ‘혼’(Hone)이라는 건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성별, 국적, 연령, 위치, 집주소, 직장주소와 같은 수백만의 프로파일을 뒤지면서 통계적으로 근사치에 있는 목표대상을 찾아낼 수 있다. 혼(Hone)은 또 노트북이나 휴대전화와 같은 이동성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위치도 추적할 수 있다(itworld). 이는 대한민국에서 정부와 대기업이 4만 2천여 개에 달하는 인터넷 게시판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그 모니터링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2009년 이란의 반체제 시위 때도 핀란드와 독일의 합작 모험자본인 노키아 시멘스(Nokia Siemens)가 이란 정보통신부에 온라인 활동가들을 추적하고 감옥에 가두는데 사용되는 기술을 팔았던 적이 있다(democracynow). 이렇게 사회운동과 민중 봉기를 탄압하고 억압하기 위한 정보 (감시) 기술의 개발과 판매는 미국 정부와 군산복합체가 각국 정부와 협력해온 더 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집트에서 시위대에게 발포된 최루탄과 경찰 및 군대가 사용한 여러 시위 진압 무기는 대개 미국의 군수산업체(Combined Systems International)에서 제조해 수출한 것이다(commondreams).

“Made in U.S.A.” (출처: News Pictures/MCP / Rex Features @ telegraph.co.uk)

미제 최루탄과, 페이스북의 실명제나 그 이용자를 감시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은 정치적 맥락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테러리스트였던 혁명가, 감시 도구로서 혁명적 미디어

그래서 아랍의 변혁운동 과정과 (소셜) 미디어 행동주의에서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권과 기업의 감시과 통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끝내 민중 봉기와 사회 변혁에 이르렇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국가권력의 온갖 탄압과 억압을 뚫고, 그러면서 구타, 감금, 고문, 학살의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겪으면서, 결국 체제를 무너뜨리고 혁명을 멈추지 않는 인민의 투쟁은 새삼 위대한 일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와 이집트 무바락 정권은 동맹국임을 의심하지 않았다(aljazeera). 그런 식의 동맹 관계 속에서 나러스와 같은 기업이 판매한 감시 기술 상품을 이용해 미국과 아랍의 독재자들은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들”(techliberation)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안보 활동을 해왔다. 민중 봉기와 체제 변혁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되지 않았더라면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였을 사람들(aljazeera). 이들이 현재 미국의 지배 미디어 보도에서조차 민주주의 혁명가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새삼 역설적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회 변혁 운동을 조직하는데 적절히 활용되었더라도, 그 이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과 사회 정의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활동가와 시민을 때려잡는 기술로 활용된 페이스북을 가지고 “페이스북 혁명”이라며 이 운동을 명명하는 것 또한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수 년에서 수십 년동안 이 혁명이 조직되는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관련 글:

열린유출(OpenLeaks)

열린유출(OpenLeaks)이 떴다. 경유(via): arstechnica.com

http://www.openleaks.org/

위키유출과 이것의 핵심적인 차이는 위키유출 열린유출 내부에서 편집이나 관리(admin)을 (적어도) 전담하지 않고 (거의 관여하지 않고), 대신 비정부단체(NGOs), 언론(media), 조합 혹은 노조(unions) 등과 함께 연계해서 내부고발 정보를 공개 유출한다는 것.

위키유출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쟁점들과 기술적·사회적 해법들이 필요할 것이다: 익명, 검증, 안전, 연대 혹은 연계의 조율 등 …

현재 초기 개발 상태(알파). 본격 가동(베타)는 2011년 상반기 안에.

Cryptome.org로 유출된 열린유출 웹사이트 관련 소개문 – a leaked PDF

그리고 아래는, 지난 2010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27C3 [27번째 CCC()  회의] 때 있었던 열린유출에 대한 다니엘 슈미트의 발표다:

관련 글:

위키유출(Wikileaks) 비판: “과학적 언론,” 혹은 주류 언론과의 거래

아래는 황해문화(2011봄)에 기고하기 위한 초안의 일부다.

3. “과학적 언론,” 혹은 주류 언론과의 거래

주류 언론은 국가 안보를 구실로 혹은 정언유착의 관계 속에서 정보 유출의 제약을 받는 반면, 위키유출은 “인터넷의 논리에 따라 정보를 유출한다.”1 그래서 제이 로젠(Jay Rosen)은 위키유출을 “세계 최초의 국가없는 뉴스 조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은 일면적인데 위키유출이 뉴스의 원천 정보를 생산하는 과정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유통에 있어서는 점점 기존의 주류 언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키유출을 주류 언론과 대안 미디어의 되섞기(remix 혹은 미디어 융합)의 한 모델로 볼만하다. 포스트포드주의의 인터넷 판본이기도 한 웹2.0과 소셜 미디어의 주류 네트워크문화에 발맞춰 위키유출은 뉴스의 생산에서 ‘위키위키’(wikiwiki)2 방식을 표방하며 뉴스 생산자와 수용자 간의 엄격한 노동분업 구조를 벗어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그 뉴스의 유통에 있어서는 마치 국제 통신사처럼 여러 주류 언론 기업들과 제휴하면서 동시-대량의 파급력을 보존하고 있는 주류 언론의 지배적인 정보 유통 구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어산지가 말하는 “과학적 언론”(Scientific Journalism)도 이런 되섞기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위키유출은 단지 객관성이 아니라 과학이다. 위키유출은 새 유형의 언론을 생성하는데, 그것은 과학적 언론이다: 우리는 다른 미디어 출구와 함께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뉴스를 제공하면서도 또한 그것이 진짜인지 검증한다. 과학적 언론은 당신이 뉴스 이야기를 읽고, 그런 후 온라인에서 클릭해 그것의 출처인 원본 문서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런 방식으로 당신은 이 기사가 진짜인가, 기자의 보도가 정확했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3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만이 아니라 연구 방법과 분석 대상이 된 원천 데이터를 함께 공개하여 그 과학성을 표방하듯이 뉴스에 있어서도 고도로 편집된 요약 기사를 제시하면서도 그 근거가 되는 원천 정보를 함께 공개한다는 것이다.4 이 때 위키유출은 원천 정보의 제공 자체(내부 기밀 문서의 폭로)보다 이를 통해 수용자가 뉴스의 의미화 실천에 적극 개입하도록 초대되는 뉴스 생산 방식의 탈중심화 기획으로 보인다. 기존 언론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위키유출의 정보정치의 잠재력은 여기서 발생한다. 우선 기존의 언론은 (주요 뉴스 원천이자 광고주인 정부와 기업) 권력이 공식적으로 유출(공개)하는 정보나 비공식적인 유착 관계 속에서 유출되는 정보에 의존하는 반면, 위키유출은 “그 권력의 규칙을 위반하는 독립적 유출을 특화했다.”5 그렇게 되자 주류 언론이 확보한 정보로 구성하는 진실성은 권력과 언론 간의 상호 협력과 지배력의 보존을 위한 타협의 결과인 반면, 위키유출의 경우 그 기획상으로는 위키유출 자체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진실성은 그 권력에 상당히 위협적인 수준까지 전개될 수 있는 것이다. 주류 언론의 편집 과정에 동반되는 (알아서 다해주는) 검열과 같은 것이 위키유출에서는 (무엇을 공개할 것인가를 선별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또, 지금까지 정보 유출이 주로 주류 언론이 대중을 위해 매개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위키유출은 내부고발을 통한 정보 유출이나 유출된 정보의 해석에 있어서 대중이 직접 뉴스 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주류 언론이 매개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위키유출의 이런 기획과 접근이 함축한 급진적 정보정치의 잠재력은 결과적으로 잠재적인 것에 그쳤다.

위키유출이 언론을 넘어선 언론으로서 위키 방식을 충분히 급진화하지 못한 것은 주류 언론과의 제휴 관계에서 드러난다. 원천 정보 전체를 공개하는 것과 동시에 위키유출은 사회적 파장을 최대화할 수 있으면서 공인된 신뢰성을 가진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기성의 주류 언론에 접근해 협상했다. 이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우선 정보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표방한 위키유출이 내부고발로 유출된 정보를 널리 공개할 때는 정보 독점과 통제의 방식을 택한 꼴이다. 위키유출이 특히 5개 대형 신문 기업과 교정(redactions) 과정을 협력하면서유출된 정보를 선별해서 출판하는 배타적 권리를 그것들에 부여한 것은 스스로 정보 자유를 핵심 가치로 여기는 해커철학을 등진 것이나 다름없다.6 애초에 위키위키 혹은 공동체의 참여 방식을 표방했음에도 주류 언론과 손맞고 점차 초대형 사건을 만드는 선정적 폭로 중심의 “거대유출”7로 기울어진 것이다. 어산지가 세계 유수의 주류 언론사들과 함께 폭로할 문서를 편집하고 기자회견을 열면서 적극 채택한 스펙타클 효과는 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듯 하다. 지리(Giri)가 지적하듯이, 권력이 마치 이러저러한 정부기관이나 기업 조직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몇몇 권력자들에게 있고, 그들은 대중에게 진실을 숨기거나 조작하면서 권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8 그런 사고틀에는 “지배 권력과는 그것이 숨기고 있는 진실의 극적인 폭로를 통해서 싸울 수 있다”는 태도도 포함된다. 이는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이 지적하는 “미국 국무부라고 하는 ‘나쁜’ 비밀집단을 공격하는 ‘좋은’ 비밀집단이라는 위키유출의 음모적 양식”9과 짝을 이룬다.

이와 같이 위키유출이 기획하고 주류 언론이 연출하여 재현하고 있는 지배 권력과의 투쟁 서사시는 그러나 (런던에서, 어산지가 체포되던 때도 그와 상관없이 진행된 등록금 인상 반대) 학생 시위나 세계 각 곳의 노동자 투쟁과 연대할 여지를 두지 않는 듯하다.10 그렇다면 위키유출이 주류 언론과 거래하며 채택한 폭로형 정보 스펙타클을 전세계가 대량 소비하는 와중에 우리는 언론의 자유나 알권리조차 그런 스펙타클의 형태로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키유출은 저 상층부의 ‘권력’에 대항해 시민의 ‘알권리’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에도 시민과의 연결은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11 그래서 위키유출이 ‘혁명의 언론’이라거나 기존 언론의 역할을 반성하게 했다는 반응들에서도 여전히 알권리나 언론의 자유는 공동체의 결사나 사회 투쟁 과정에 결부되는 권리 개념이라기보다 대중에는 은폐돼온 권력 내부의 어떤 진실을 적극 알려내는 위키유출과 같은 언론 조직이 누려야할 자유 개념에 머물러 있다.12 이에 더해 주류 언론과 위키유출의 제휴 관계와 협력 과정은 물론 의도된 것이 아니더라도, 언론 기업이 위험관리 차원에서 적용하는 그 원천 정보의 외주생산 방식에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 즉, 언론 기업이 져야했을 법적 책임이나 위험을 위키유출이 감수하고 이들 언론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폭로 행위를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13 이런 차원에서 위키유출이 탐사보도 형태의 언론이라거나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의 보장을 받아야한다는 식의 구도 설정은 위키유출에 대한 탄압에 맞선 방어 논리이기도 하지만 주류 언론 기업들의 알리바이를 위해 혹은 부수적 혜택을 위해 동원된 논리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한계들이 드러나면서 다니엘 슈미트와 브리기타 욘스도티르를 비롯한 위키유출의 일부 자원 활동가들은 위키유출이 대량 폭로와 미디어 이벤트로 가는 방식을 비판하며 2010년 11월 외교전문의 폭로가 준비되는 시점에서 위키유출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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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냥 ‘위키’라고 줄여 쓰기도 하는데, 이는 하와이 선주민 언어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소프트웨어 디자인에 적용되면서 텍스트 생산의 근대 자본주의적 노동분업(저자 - 편집자 – 독자) 구조를 따르지 않는 열린 출판(open publishing) 방식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 누구나 바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때 ‘위키’(빨리)는 시간의 문제라기보다는 텍스트 생산의 분업 구조를 극복한 직접성의 관계의 문제이다. 누구나 직접 쓰고 편집하고 읽는다는 것이다.

3 Julian Assange, “Dont’ Shoot the Messenger for revealing uncomfortable truths,” The Australian, 2010.12.8

5 Felix Stalder, 같은 글

6 Saroj Giri, WikiLeaks_beyond_WikiLeaks,” Mute, 2010.12.16

7 현재 아이슬란드 국회의원이며 시인이자 반전운동가로 위키유출에 참여해온 브리기타 욘스도티르(Birgitta Jónsdóttir)는 위키유출이 유출된 정보를 다양한 풀뿌리 조직, 캠페인, 지역 운동에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의 독점적 통제와 주류 언론과의 협력을 통해 미디어 스펙타클 만들기에 경도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거대유출”(megaleaks) 혹은 “대량유출”(massive leaks)이라는 표현을 썼다. CBCradio The Current, “The Man Behind WikiLeaks, Julian Assange,” 2010.12.6

8 Saroj Giri, 같은 글

9 Slavoj Žižek, Good Manners in the Age of WikiLeaks,” London Review of Books, 2011.1.20

10 Saroj Giri, 같은 글

11 Saroj Giri, 같은 글

12 어사쥐 자신이나 위키유출을 옹호하는 측에서 그 활동이 언론의 자유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며 인용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언론 및 출판의 자유만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와 함께 집회 및 청원의 권리를 함께 명시하고 있다. 한 해커의 해석에 따르면, 종교나 표현의 자유는 공동체가 없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에 신념(종교)과 표현(언론)은 결사(연합)의 사례일 뿐이다(James Vasile, “Hack the System,” Hacker Visions, 2009.7.27). , 공동체의 결사를 위해 그 표현(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고, 권력이 표현이나 발언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를 통해 공동체가 결사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언론)의 자유는 특정한 언론 조직의 그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선언될 때도 공동체의 결사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13Felix Stalder,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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