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자본을 위한 미디어법? 전파를 되찾아오는 수밖에…

(2009년 11월 초, 연세대학원신문에 실린 글)

이번에 통과된 미디어법은 방송 전파를 기업에 3분의 1, 정부나 공공의 목적으로 3분의 1, 그리고 마지막 3분의 1은 비정부단체에 할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날, 의사당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새 미디어법을 반기며 환호하였고 수 십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미디어 기업들은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반발했지만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가 사적 미디어 소유자의 자유와 혼동될 수 없다고 천명했다. 2009년 10월 10일 아르헨티나에서 타전된 소식이다. 반면, 한국은 그와 정반대의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되고 헌법재판소도 ‘위법하지만 유효한’ 것으로 손들어줬다.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거대 신문의 방송 겸영 보장, 재벌의 미디어 소유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미디어법 말이다. 이런 식의 미디어 장악과 통제가 지금 우리의 감성과 문화에 맞기나 한 것인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신문과 방송이 일대다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만 허용하는 ‘방송 미디어’로 제도화되어왔다면 인터넷은 일대일, 일대다, 다대다(many to many, m2m)가 모두 가능한 ‘네트워크 미디어’로 발전해왔다. 인터넷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끝에서끝’(end to end, e2e)이라고 하는 네트워크의 디자인 철학이 큰 몫을 했다. e2e는 한마디로 네트워크 시스템이 ‘다 알아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방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기능하고, 네트워크 이용자들(ends)이 그에 연결된 컴퓨터 시스템에 더 필요한 기능과 서비스를 자율적으로 만들고 나누면서 네트워크가 최적화될 수 있다는 접근이다. 네트워크의 소유자에게 제안하여 그들이 실행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네트워크에 제공하고 최대한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하자는 철학인 것이다. 인터넷이 1960년대 말에 등장하고 1990년대에 대중화되면서 우리 생활 전반을 재구조화할 정도로 빠른 혁신과 발전을 이루게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예를 들어 또래간 커뮤케이션(p2p)은 불법복제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렇게 엄청난 파일공유가 이뤄지는 이유도 기술적으로 보면 가장 효율적이며 민주적인 정보의 전송과 공유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터넷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역시 기지국이나 중앙통제센터 없이 휴대전화끼리 신호를 송수신하고 중개해주는 p2p휴대전화가 이미 가능하다.

사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그리고 휴대전화의 이동통신도 모두 인터넷과 같은 m2m, e2e, p2p의 ‘네트워크 미디어’가 될 수 있(었)다. 1930년에 브레히트는 라디오가 수신만이 아니라 발신도 할 수 있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수 있다고 개탄한 바 있지만, 1920년에 최초로 미국에서 (라디오) 방송이 제도화되기전까지 대략 20여 년 동안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지금의 인터넷과 다름없는 쌍방향 라디오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전파의 자율적 이용이 억압되고 중앙집중적으로 ‘알아서 다 해주는’ 일대다의 방송 시스템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제도화된 이후에도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대안적 공론장을 구축하는 대안 미디어로서 해적 라디오나 해적 텔레비전이 전세계 곳곳에서 등장해왔다. 197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정부나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에 우리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도록 하는 퍼블릭액세스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해적 라디오 역시 합법적으로 보장받는 나라들이 생겨났다. 전파의 독점에 기초한 제도 방송에 맞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잠재력을 실현해온 지구적 대안 미디어 운동의 역사는 한국에서도 독립영화운동, 퍼블릭액세스운동, 공동체라디오방송 등으로 공명해왔다.

또한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은 기존의 방송 미디어를 네트워크 미디어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허가받을 필요없는 열린 전파가 있고 표준화된 기기가 있고 똑똑하고 열린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막대한 하부구조(중계기, 송전탑, 교환센터, 케이블 등) 구축 비용 없이 광대역의 쌍방향 멀티미디어 방송통신을 그것도 거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단적으로, 무선 인터넷(wi-fi)을 위해 사용되는 전파(2.4GHz 등의 주파수 대역)는 기술 표준만 지키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열린 전파이다. e2e 디자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지난 10년 동안 사용돼온 wi-fi는 보편적 무선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면서 독점된 다른 주파수 대역 이상의 경제적 가치 창출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비허가 주파수 대역을 확장하자는 열린 전파(open spectrum)운동이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방송 전파의 디지털화에 따라 전면적인 주파수 재배치가 계획돼 있고 기존 아날로그 방송 주파수 대역 중 전파 간섭의 이유로 비워둔 잔여 주파수 대역(예를 들어 채널 9와 채널 11 사이)을 더 이상 비워둘 필요가 없어지는데 이를 비허가 주파수 대역으로 열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그렇게 되면 수익이 낮다는 이유로 인터넷망이 깔려있지 않은 방방곡곡에 광대역 인터넷이 가능해진다. 인터넷방송이라지만 그 쌍방향성은 기껏해야 TV보면서 쇼핑할 수 있다는 정도에 머무는 폐쇄적 IPTV를 능가하는, 누구나 원한다면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송출할 수 있는 온전한 인터넷방송이 될 수 있다. 또, 초과이익만 1조 8천억원이 넘는 이통사에 계속 고가의 통신비를 내가며 쓰는 휴대전화를 대체할 수도 있다. 즉, 지금까지 방송사나 이통사의 전파 독점에 의한 방송미디어나 독과점 통신 구조 자체를 바꿔내는 다양한 미디어 혼합 모델이 가능하다. 지난 촛불시위에서 다음 아고라나 인터넷 생중계가 대의적 정치기구나 대의적 주류 미디어의 매개없이 폭발적 여론 형성과 위력적인 실시간 직접행동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이러한 방송-인터넷 및 휴대전화-인터넷의 혼성 활용(일대다-일대일-다대다)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이전에도 제도화된 공영방송은 그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적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잘해도 ‘방송 미디어’의 응답없는 발언의 독점 구조였다. 그에 더해 법의 이름으로 정권과 자본의 독점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합법화하려는 시도가 지난 1년간 더할 나위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정권이 바뀌면 되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대의제 기구에 그 운명이 맡겨진 대의적 미디어의 한계가 더 컸던 것이 아닐까?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보면, 전파의 1/3이 비정부단체에 할당된다지만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공적 기금 지원은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고, 비정부단체 범주에는 사실상 사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단체들과 기득권을 누리는 종교단체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정작 전파가 필요한 풀뿌리 공동체는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법이 허용하는 전파 접근이 가능할 지 의문이다. 최상의 법을 제정해 민주적 미디어 환경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권에 따라 달라지고 국회나 법원이 내리는 결정에 좌지우지되는 미디어는 아무리 훌륭한 조항들을 담고 있어도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미디어가 정권과 자본의 전유물이 되고 정책 결정 과정 조차 사유화되고 있는 것이라면, 정권의 방송 장악과 방송의 노골적인 상품화를 ‘공영방송 사수’ 행동이나 절차적 민주주의로는 여간해서 막을 수 없다. 지난 1년의 경험이 새삼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렇다면, 미디어의 사적 소유와 독점으로 공공성이 파탄나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우리 모두가 직접 나서 미디어 공공 자산을 되찾아 지키고 우리의 미디어로 되돌려 놓는 길밖에 없다.

법은, 풀뿌리 공동체들이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실천하고 운영하면서 아래로부터 필요성이 제기되고 지지와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지는 결과물이어야 한다. 전문가들만 만들어왔다던 미디어 콘텐츠를 우리가 손수 만들어왔으니(UCC), 이제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우리가 직접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을 돕는 자율적 미디어 구조 자체를 손수 만들어 나가는 일도 못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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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원신문의 웹사이트가 정비 중이라고 하고, 우편으로 받지 못해 어떻게 편집되어 나갔는지 모르겠지만, 11월  초에 써서 보낸 것이다.
열린전파운동에 대해 얼렁 작업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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